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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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를 드러내리라<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4.10.01 본문 : 예레미야 13:20-27 

20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게 맡겼던 양 떼, 네 아름다운 양 떼는 어디 있느냐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네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산고를 겪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22   네가 마음으로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닥쳤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23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으리로다

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네 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

26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악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네가 행한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하시니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예레미야 13장 20절에서 27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면 

첫째_어찌하여가 아니라 옳소이다를 외쳐야 합니다. 

오늘 20절에서 주님은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게 맡겼던 양 떼, 네 아름다운 양떼는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양떼를 맡기신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보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양떼의 아름다움에 취해 세상과 짝하는 것을 선택할 때가 많지요. 

그렇게 되면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봐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곧 북방 바벨론의 침공을 의미하지요. 이는 1장에 나온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재앙과 같은 의미입니다. 

21절에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네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산고를 겪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라고 합니다. 친구 삼았던 바벨론이 나의 우두머리로 세워진다는 거예요. 이것은 엄청난 고통이지요. 하나님도 그 고통을 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22절에 네가 마음으로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닥쳤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고 해요. 

어찌하여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났나 할 것이 아니라 내 죄악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친구로 삼았던 바벨론을 탓할 것이 없어요. 그 바벨론은 하나님이 알아서 손보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말씀을 통해 내 죄만 깨닫고 회개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대충 믿으면 이런 말이 성경에 있는지 평생을 모르지요. 오로지 해결이 안 돼서 분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것을 말씀 가운데서 발견하게 되면 어찌하여가 아니라 옳소이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수치의 사건 앞에서도 수치를 당하지 않는 놀라운 인생이 되는 줄 믿어요. 

적용질문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아름다운 양떼는 무엇인가요?

-그 아름다움에 취해 정작 하나님을 멀리하지는 않습니까?

-친구로 삼았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적이 있다면 그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요?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면 

둘째_내 몫의 고난을 인정해야 합니다. 

23절에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데,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해요. 구스인은 태어나면서부터 검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표범 역시 반점을 가지고 태어나지요, 예레미야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치 구스인의 피부와 표범의 반점처럼 유다의 죄악이 변하지 않는 그들의 속성이 되었다는 것이에요. 우리라고 다르겠습니까?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는 죄를 물처럼 먹고 마시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악을 우리 스스로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지 않으면 이런 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조차 알 수가 없죠.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악입니다. 묵상하지 않는 만큼 세상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런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으리로다라고 하지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25절에서 주님은 이는 네 몫이오.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고난의 사건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우리에게 합당한 몫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이 헤아려 정해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힘든 배우자, 자녀, 직장 상사도 나에게 가장 알맞고 적당한 분깃으로 하나님이 정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내가 하나님이 아닌 사랑과 거짓을 신뢰한 죄를 회개해야 해요. 이것이 곧 수치의 사건 가운데서도 수치를 당하지 않고 구원으로 연결되는 구속사적인 말씀 묵상입니다. 

적용 질문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변하지 않는 내 속의 악을 직면합니까?

-그러지 못해서 하나님이 흩어버리신 사건은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과 사건도 하나님이 헤아려 정해주셨음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며 회개할 것을 찾으십니까? 

《공동체 고백_내려놓지 못하는 갑의 습성》 

퇴직과 보직 해임에 수치를 당하고도 여전히 갑의 자리에 있길 바라는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키길 원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퇴직 후 재취업 의향을 묻는 전화를 받고 한 신설회사의 대표를 만났어요. 그런데 그는 10년 전 제가 보직 해임이 되었을 때 프로젝트 제안 활동을 같이 한 협력사 직원이었어요. 

저는 하나님이 그를 제 위에 세우신 것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요. 오랜 기간 부서장으로 일하며 몸에 밴 습성을 버리고 낮은 위치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저의 치마가 들리고 발뒤꿈치가 상하는 듯한 아픔을 느꼈어요. 

퇴직하던 날에 그날의 큐티 말씀을 묵상하며 퇴직 후 인생 후반전에는 순종하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했건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니 원래의 모습이 불쑥 튀어나와요. 믿음이 있는 척을 하지만 여전히 세상이 부러운 저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갑질하던 저의 습성을 흩으신 것이 저를 헤아려 주신 분깃임을 깨달아요. 

보직 해임이 되었을 때 1년이 넘도록 정해진 자리도 없이 회사를 다니고 복직되었어도 모 회사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치마를 얼굴에 들추는 수치 같았어요. 그러나 ‘난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야’ 하는 저의 마음을 주님은 간음과 사악한 소리와 음란과 음행에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화있을진저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하시는 27절 말씀에 자복하며 이런 저를 고쳐주시기를 애통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저의 적용은

갑의 습성이 흩어지고 을의 습성이 길들이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인생 후반전에는 보수에 집착하지 않고 일하겠습니다. 

27절에 내가 너의 간음과 사악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네가 행한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고 하세요. 하나님이 우리의 수치를 드러내시는 이유는 우리가 행한 악을 보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에요. 이 얼마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 같은 이야기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지 않을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죄를 짓게 되지요. 

그 어떤 수치의 사건 앞에서도 그 사건보다 더 큰 내 죄악을 하나님이 보시고 허락하신 사건임을 인정하는 것이 영원한 수치를 당하지 않고 남겨주신 복을 누리게 되는 비결임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함으로 수치를 당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립니다. 주님 

든든한 친구가 될 줄 알고 화친을 맺은 바벨론 같은 세상이 오히려 수치스러운 재앙이 되어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찾아왔냐고 우리는 늘 이야기하지만 이제는 말씀을 통해서 그 고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구스인의 피부와 표범의 반점처럼 우리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죄악이 우리 안에 가득합니다. 이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그 교만한 말을 버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는 주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수치를 드러내시는 이유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임을 깨닫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정결하게 하시는 주님을 힘입어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을 수 있게 도우시고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주일예배_하나님의 사람

새벽큐티_ 류익현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AsByqajorE4?si=Kcfuk29dTAJVA_WQ

1001큐티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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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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