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포도주와 새 부대<큐티노트_김양재 목사>
날짜: 26.02.04 본문: 마가복음 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마가복음 2장 18절에서 22절까지예요.
하나님 아버지, 내 신앙의 형식과 기준을 내려놓고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을 담는 새 부대가 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새 포도주와 새 부대는
첫째_”어찌하여“라는 판단을 내려놓을 때 시작됩니다.
오늘 18절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고 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라고 물어요. 신앙의 형식주의와 비교 의식이 만들어낸 질문이지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서로 성향이 달랐는데도 이런 질문을 합니다. 자기들은 금식하고 있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냐는 거예요. 이 질문의 핵심은 금식 자체가 아닙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교하는 기준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교만이에요.
신앙생활은 ”어찌하여“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왜 그러실까“를 묻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잡수시면 거기에 뜻이 있는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행위와 외형만 보고서 그들이 금식을 안 하니까 신앙이 없다는 논리로 판단한 것이지요.
우리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왜 저 사람은 새벽 기도를 안 하지, 왜 큐티 나눔을 안 하지 등등 생각해 보면 전자동으로 어찌하여라는 질문을 많이 하지요. 결국 내 자신이 중심이기에 그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금식을 시키지 않으셨을까 하는 질문은 없어요.
제자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은혜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의로 “왜 안 하냐”만 따지는 거예요.
[적용 질문]
- “어찌하여”를 외치며 다른 사람의 신앙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내가 기준이 되어 누군가를 정죄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새 포도주와 새 부대는
둘째_신랑과 함께 있는 기쁨을 아는 데서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에 금식이 필요한 때가 있음을 설명을 하시면서 혼인 잔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19절에 금식하지 않는 이유를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라고 하시잖아요.
이 말인즉슨 지금은 기쁨의 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랑이시고 제자들은 혼인 잔치에 초대된 손님인 셈이죠. 신랑과 함께 있는 잔치 자리에서 금식하는 것은 시기와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거예요.
제자들이 지금 예수님과 동행하며 말씀을 배우고 교제하는 이 기쁨의 시기에는 금식이 아니라 순종과 교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예수님을 내 몸에 짊어지고 다닌다면 왜 금식이 필요하겠습니까? 반대로 20절에는 금식이 필요한 때가 있다고 하세요. 그때가 언제인가요? 신랑을 빼앗길 날,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때가 오면 그때는 금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말씀이시니 예수님을 잃게 되는 때, 다시 말해 말씀을 잃어버리고 회개가 끊어진 때에는 금식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날마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짊어지고 다녔다가 빼앗겼다가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금식은 단순히 종교적인 열심이나 신앙 경건의 도구가 아니에요. 예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을 때 그 단절을 애통해야 하며 다시 주님께 나아가는 회개의 통로로서 금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용질문]
- 요즘 금식이 필요한 때입니까? 아니면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의 때입니까?
- 예수님을 내 삶에서 빼앗긴 것처럼 느껴진 일은 무엇인가요?
《공동체 고백_청년 큐티인》
믿음 있어 보이고자 노력하며 다른 이들을 판단하던 낡은 가죽 부대 같은 마음을 회개하고 구원을 위해 적용하겠다는 한 청년의 청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여러 번 입시에 실패한 뒤 오수째 대학에 입학했어요.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지만 저는 졸업하지 않은 채 선교에 목을 메었어요. 선교사가 되어 척박한 곳에 가서 봉사하며 믿음이 좋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지난 날을 보상받을 것만 같았죠.
그래서 북한 선교를 꿈꾸며 40일 작전 금식을 시작했어요. 남들보다 더 믿음 있어 보여야 했기에 위액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어지럼증이 생겨도 무작정 참았어요. 그러다 결국 32일째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도 “어찌하여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나요?” 하며 눈물만 흘렸어요. 하나님을 믿지 않으시는 부모님은 그런 저를 보시며 안타까워하셨죠.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신앙적으로 잘 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다른 이들의 믿음을 판단했어요.
하지만 21절과 22절 말씀처럼 이런 제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로는 하나님 말씀 참된 복음을 담을 수 없음을 깨달아요. 제 욕심과 혈기, 확신으로 가득한 가치관대로 살아온 것을 회개해요.
교만한 제게 복음을 알게 하시려고 제 야망을 막으신 하나님이 100% 옳으십니다. 구속사의 가치관으로 구원의 때를 잘 분별하며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겸손히 섬기는 제가 되기를 소망해요.
저의 적용은
교회에서 맡겨진 직분을 그만두지 않고 잘 섬기겠습니다.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21절과 22절에서 예수님은 아주 분명한 비유를 드십니다. 생베 조각은 아직 한 번도 빨지 않은 재질로 물에 닿거나 시간이 지나면 수축해요. 이것을 낡은 옷에 덧 데면 새 천이 줄어들면서 기존의 낡은 옷을 오히려 더 찢어놓지요.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의 새 가치관을 이렇게 낡은 율법적 틀에 맞추면 오히려 상처를 더 깊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와 지역 감정, 가족 간의 갈등 등 버리지 못한 옛 가치관으로 예수님의 새 질서를 덧붙이면 옷이 더욱 찢어지죠.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22절에서 말하는 낡은 부대는 오랫동안 사용되어 딱딱해져 있는 상태예요. 그런데 여기에 발효 중인 새 포도주를 넣으면 가죽 부대는 팽창하는 포도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터지고 맙니다. 결국 부대도, 포도주도 다 잃게 되는 거지요. 새 시대가 열렸는데 옛날 율법에 두드려 맞추면 가죽 부대가 터집니다.
큐티 하면서 은혜 받아도 집에 오면 옛날 가치관 때문에 적용이 안 되는 경우들이 있지요. 우리가 복음의 새 포도주를 담으려면 우리 안에 낡은 생각과 습관, 자존심, 혈기, 확신까지도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새 부대의 마음이란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며 예수님과 교제하며 새 가치관으로 반응하는 마음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안에 새 포도주를 부어주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그 복음을 담아낼 그릇이 여전히 낡은 부대라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 해도 흘러버릴 수밖에 없어요.
어제의 기준, 옛 자존심, 오래된 감정과 상처, 고정관념과 율법주의 등이 여전히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면 복음은 내게서 자라날 수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잔치의 기쁨, 말씀 안에서의 순종과 회복은 새 부대의 마음으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새로운 회개의 결단, 오래된 교만과 판단을 끊는 적용,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더 순결하고 부드러워진 믿음의 태도를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오늘도 내 안에 낡은 부대를 버리고 복음의 능력을 담을 새 부대로 살아가는 하루를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새 포도주를 부어주길 원하시는데, 저희는 여전히 낡은 가죽 부대를 붙들고 살고 있지는 않나 돌아봅니다.
형식과 열심으로 포장된 자기의, 판단과 비교로 가득한 교만한 마음, 복음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율법적 기준들을 이제는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듣고도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주님의 뜻이 아닌 내 뜻대로 적용하려는 낡은 부대를 이제는 버리게 도와주시옵소서 복음을 담을 새 부대로 날마다 새로워지길 원합니다.
“어찌하여 금식하지 않느냐”고 묻는 교만의 자리에서 내려와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회개의 때에는 애통함으로 금식하고, 동행의 때에는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분별력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새 포도주 되신 예수님을 내 삶에 담아내고자 낡은 습관과 고집, 혈기와 자존심, 옛사람의 방식들을 말씀으로 도려내게 도와주시옵소서.
말씀을 은혜로 받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예수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반응하는 부드럽고 유연한 새 부대로 살아가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일예배_예수의 뒤를 따라가<최대규 목사>
새벽큐티_이진호 초원지기
https://www.youtube.com/live/f2eZV_Zy_uc?si=wnRDGSuB8jU_6W4l
0204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고양이 걷어차지 마세요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 #147 평생 자기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