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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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의 부르짖음<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4.10.02 본문 : 예레미야 14:1-12 

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땅 위에서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로 오르도다

3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얻으려 하였으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리며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 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의 머리를 가리는도다

5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리며

6   들 나귀들은 벗은 산 위에 서서 승냥이 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흐려지는도다

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

9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10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예레미야 14장 1절에서 12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애통함으로 주님께 부르짖는 오늘 하루를 보내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애통함으로 부르짖는 것은 

첫째_나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1절에 보면 가뭄에 대해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3절을 보니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해 빈 그릇으로 돌아오고, 4절에는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졌다고 해요.

가뭄 때문에 비참해지는 상황이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부끄러워 머리를 가렸다고 하네요. 

비가 오지 않아 일어난 일인데 왜 우물의 물을 기르러 간 자와 밭을 가는 자가 부끄러워했을까요?

성경이 가뭄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부끄러워하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사업하다 망해도 부끄럽고, 자녀가 공부를 못해도 부끄럽고, 남들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해도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부끄러움은 결국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찾아옵니다. 

남들이 누리는 것은 나도 누려야 하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도 나는 가져야 한다는 그 이기심이 결국 우리의 영육의 가뭄으로 찾아오는 것이지요. 부끄러운 이유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떳떳하면 결코 아득할 일이 없을 텐데 말이지요. 

숨은 부끄러움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일 없다고 하면서 당장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 하니 누구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어요. 

저도 보기에는 부잣집 며느리로 시집을 갔지만 막상 가보니 겉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어도 정작 제가 기를 수 있는 우물물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게 빈 그릇이 되다 보니 늘 저는 자존심이 상하고 근심되는 저의 삶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것이 저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러니 늘 속으로는 분하고 겉으로는 두려웠던 것이죠. 누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그 시간이 도무지 지날 것 같지 않아서 더욱 괴로웠지만 그것을 통해 말씀을 보게 되고, 그 애통함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니 제 육신의 가뭄보다 영적 가뭄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그 부끄러움의 죄를 주께 고백하니 하나님이 왜 이런 가뭄을 저에게 주셨는지 말씀으로 해석해 주셨습니다. 

적용질문

-어떤 가뭄의 때를 보내고 있나요?

-육적 가뭄보다 영적 가뭄을 더 심각하게 여기나요?

-숨은 부끄러움의 죄를 날마다 주님과 공동체 앞에서 고백하십니까? 

애통함으로 부르짖는 것은 

둘째_우리 가운데 주님이 계심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7절에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해요. 큰 수치의 사건을 당하게 되니 주의 이름을 생각해서라도 저를 좀 봐주세요 하며 기도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의 이름 때문에 우리를 보호하시고 참으시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런데 끈질긴 우리는 참 돌이키지를 못해요. 예레미야는 자신과 백성을 분리하지 않고 자신을 참아주셨으니 이 백성을 위해서도 기다려주시기를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늘 자신의 죄악을 직면하는 사람은 별 인생이 없음을 알게 되고, 늘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인생이 되지요.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임하시면 그들도 변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8절에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라고 해요. 

잠시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크게 개의치 않아요.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때문이에요. 예레미야는 지금 하나님이 유다에 대해 꼭 나그네처럼 대하신다고 토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유다의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든다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에요. 

9절에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의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하지요.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난당할 때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떠나셨나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예레미야는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무조건 도와주시는 게 능사는 아니지요. 

때로는 주님이 그 고통을 묵묵히 지켜보시며 그냥 함께해 주시는 것이 구원을 위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는다면 내 죄 때문에 애통해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짖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적용질문

-아무도 나를 돕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마저 외면하셨다고 여겨진 때가 있습니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셨다는 것이 믿어지나요? 

《공동체 고백_나의 가뭄》 

물질과 관계, 가뭄의 원인이 주님을 따르지 않는 마음이었음을 깨닫고 세상 행복의 우상을 내려놓길 원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가난한 집에 셋째 딸로 태어난 저는 언니들이 입던 옷을 물려 입으며 자랐어요. 그런 환경 때문인지 제게는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었어요. 홈쇼핑으로 물건을 대량으로 주문하고는 유통기한이 지나버리기 일쑤였지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해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남편의 사업이 두 차례 망하면서 저희 가정은 경제적 고난을 겪었어요. 남편은 교회 공동체에서 양육 훈련을 받으면서 망하게 된 사건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뜻대로 살았기 때문이라 고백했어요. 

그러다 저는 코로나19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여가 시간이 많아지자 세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남편의 권유로 함께 골프를 치면서 거래처 접대도 하고 쇼핑도 자주 했지요. 제 중심에 주님의 말씀이 없으니 구원에 대한 소망은 사그라지고 남편과 돈 문제로 자주 다투었어요. 

제가 남편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남편은 신용카드를 빼앗았어요. 그리고 예배도 드리지 않고 공동체를 섬기는 사명도 내려놓았죠. 저는 그런 남편을 원망하며 변하지 않는 환경만 탓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물질과 관계의 가뭄 가운데서 주님을 부르짖게 하시고 세상 행복을 쫓던 제 모습을 직면하게 하셨어요. 그러자 건강한 자존감도 생겨 남편에게 원하는 바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10절 말씀처럼 우상숭배로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는 발을 멈추게 되었답니다. 저의 가정을 버리지 않고 제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저의 적용은 

싸다고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하지 않고 가계부를 쓰겠습니다.

교회 소그룹 지체들의 고난과 죄를 내 일처럼 여기며 구원을 위해 권면하겠습니다. 

10절에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라고 해요. 

하나님과 교제가 안 되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11절에서 예레미야에게 그들을 위해 복을 구하지 말라고 하시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애를 써도 구원이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우리는 심판 뒤에라도 남겨주실 것을 기대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 아프고 힘든 일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말씀으로 구할 때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실 줄 믿어요. 

어떤 응답도 나에게 최고의 응답이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립니다. 주님 

가뭄의 사건이 찾아와도 그 가뭄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찾기보다 갈증을 해결하려고 마른 우물만 힘겹게 찾아다니는 저희예요. 마른 땅에서 구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구원의 비를 갈구하는 저희가 되길 원합니다.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이 범한 죄와 타락을 자기 일처럼 슬퍼하며 기도했듯이, 저희도 은혜를 입은 자로서 연약한 가족들과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어그러진 길로 가고 있는 가족들과 지체들이 있다면 이제 그들의 발걸음이 말씀 아래 바른 길로 옮겨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일예배_하나님의 사람

새벽큐티_ 박성민 초원지기

https://www.youtube.com/live/Vn8e24CemJo?si=ZQgNUiOG_h_R-ULX

1002큐티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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