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갈 길을 가리라 <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5.03.10 본문 : 누가복음 13:31-35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누가복음 13장 31절에서 35절까지예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우리도 사명의 인생을 걸어가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려면
첫째_죽는 것이 완전한 사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31절에 곧 그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라고 해요. 이들이 정말 예수님이 걱정되어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천만이죠.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유대 사회에서 존경받던 종교 지도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법을 가르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하지만 그 속은 뻔하지요. 헤롯의 사주를 받았거나 예수님을 그 지역에서 떠나시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들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계셨어요. 그래서 32절에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고 답하세요.
저 여우란 간교한 헤롯을 가리키지요. 여기서 헤롯은 갈릴리와 베레아 지방을 다스리던 헤롯 안디바인데, 그는 한때 세례 요한이 죽고 난 다음 예수님을 잠깐 보기를 원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일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또 사람들이 그분을 따르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거예요.
자기가 그 지역의 소위 짱인데 얼마나 위협이 되었겠어요? 그래서 이제는 노골적으로 돌아서서 적개심을 드러내는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헤롯이 방해해도 예수님의 사역은 쉼없이 계속될 것이고 제삼일에는 완전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취될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인 구원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지요. 결국 구원 사역의 완성은 죽어지는 것입니다.
내 사역에 방해가 된다고 소리를 높일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져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묵상하고 적용하며 걸어갈 때 완전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
-겉으로 걱정하는 척하지만 속으로 음모를 꾸미는 간교함은 없습니까?
-어떤 방해 가운데서도 내가 죽어져야 할 십자가의 자리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나요?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려면
둘째_찬송을 통해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33절에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하세요. 예수님이 가셔야 할 길은 어디인가요? 바로 십자가를 져야 하는 예루살렘이지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이루시고자 예수님이 적용해야 할 일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이었어요. 자신의 사명을 정확히 아셨기에 주위의 환호에도 또 수많은 방해에도 십자가를 길로 놓고 가는 적용을 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요? 앞서 누가복음 9장에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미리 말했잖아요. 그 예언의 말씀대로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결국 우리의 사명이 다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는 확신에 이야기도 되지요.
34절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전혀 깨닫지 못해 예수님을 대적하며 죽이려 하는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애통해 하시는 것이지요. 구원을 위해 우리를 수도 없이 부르시고 힘써 오셨음에도 그것을 거부하고 사망으로 치닫고 있는 그들이 너무 가슴 아프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버렸기에 그 결국에 어떻게 된다고 하나요? 35절에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림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세요.
나를 보지 못한다로 맞히는 말이 멸망과 심판의 이야기로 들리지만, 원어 성경에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일을 찬송하리로다로 마무리되고 있어요. 비극적인 역사의 이면에 하나님의 자비와 그 속에 섭리가 있으리라는 말씀이지요,
어떤 비극적인 심판의 일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가 막힌 사건 속에서도 말씀으로 그 사건을 해석하고 주님의 옳으심을 고백하며 찬송할 때 주님을 보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적용질문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인가요? 그 사명이 다하기 전까지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나요?
-심판의 사건 속에서도 말씀으로 해석된 찬송이 있나요?
《공동체 고백》
성인이 되고서 주님을 떠났지만 불신 결혼한 남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오자 자신을 부르고 또 부르신 주님을 만나 가정이 회복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3대째 모태 신앙인인 저는 매일 저녁 할머니와 가정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봉사하며 자랐어요.
하지만 어른들의 강요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인생의 걸림돌처럼 느껴져 성년이 된 뒤로는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푹 빠져 주님의 품을 떠났죠.
그런 저를 안타까워한 교회 언니와 오빠들이 연락하고 찾아오기도 했지만 저는 이리저리 피해 다녔어요. 그럼에도 하나님이 저를 기독교인들만 채용하는 직장으로 인도하신 덕분에 기도로 업무를 시작하고 예배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주께로 돌이키지 않고 내 미래를 보장해 줄 것 같은 남자와 불신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늘 정시에 퇴근하는 시간 강박이 있었고, 돈을 모으고자 쇼핑도 외식도 여행도 하지 않았죠. 그동안 돈 개념, 시간 개념 없이 살아온 저는 숨이 막혔어요. 그제야 저는 지겹게만 여겨지던 예배가 떠올라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고자 교회에 갔습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34절처럼 주님을 떠난 저를 몇 번이나 불러주셔도 제가 말씀 듣기를 원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혈기 부리는 남편을 속으로 무시하며 침묵으로 일관한 저 때문에 가정 불화가 일어난 것도 알게 되었죠.
저희 부부는 날마다 큐티하고 말씀으로 각자 자기 죄를 보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가고 있어요. 35절처럼 황폐해진 가정을 중수시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저의 적용은
남편이 지적할 때 하나님의 책망으로 들으며 네 맞아요라고 답하겠습니다.
자녀들이 믿음의 배우자와 결혼하도록 매주 공동체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하루 10분씩 기도하겠습니다.
요새 젊은 세대들이 중독, 탐욕, 탐식으로 흘러 떠내려가는데 이 남편은 그렇게 절제하며 산다니 정말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정말 맞아요. 하시기 바라고요.또 남편은 인생의 목적이 아끼는 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면 또 이제 아내가 숨이 막힐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십자가를 길로놓고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를 늘 간교한 말과 속임수로 방해합니다. 그런데 나에게 주신 말씀과 사명이 확실하면 어떤 환호와 비난에도 요동하지 않고 내가 죽어져야 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어요.
오늘 하루도 주님과 함께 그 사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릴게요. 주님
세상의 환호에 솟고 세상의 비난에 무너지는 연약한 인생입니다. 내가 만난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셔야 그 사명의 길을 걸어갈 텐데, 달콤하고 교묘한 말에 현혹되어 사명의 자리를 떠나려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얄팍한지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오늘 내가 갈 길을 가야 한다고 선포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는 그 길을 가겠다고 하십니다. 저희도 예수님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칭찬의 자리, 환호의 자리, 누릴 것이 많은 자리가 아니라 구원 때문에 낮고 낮은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는 저희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새끼를 모으는 암탉처럼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그 애통한 초청에 반응함으로 황폐한 인생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주일예배_상한갈대
새벽큐티_장용석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T8KXzlOnSac?si=zjN3E0hlOmm36iyQ
0310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정리정돈 잘하는 법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