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어나 중수한 사람들 <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4.07.15 본문 : 느헤미야 3:1-13
1 그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4 그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5 그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6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7 그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쪽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 및 미스바 사람들과 더불어 중수하였고
8 그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다음은 향품 장사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9 그다음은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10 그다음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11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화덕 망대를 중수하였고
12 그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고
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주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느헤미야 3장 1절에서 13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함께 일어나 공동체를 중수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함께 일어나 공동체를 중수하려면
첫째_예배를 회복함으로 성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제안한 성벽 재건에 백성이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1절을 보면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했다고 하는데,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재물로 바쳐질 양들이 이 문을 통과해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양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지요. 속죄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이 대속물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모든 인류를 위한 속죄의 제사가 들려졌어요. 그래서 성벽 재건 공사는 양문으로 시작해서 양문으로 끝을 냅니다.
이렇듯 어떤 사건도 예수님으로 시작하고 끝날 때 거룩하게 구별됩니다. 악하고 더러운 사람, 힘든 환경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바라보면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이죠. 그래서 양문 건축은 예배의 회복을 의미해요.
고난 중에도 예배가 회복되면 저절로 거룩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말씀 보고 기도하고, 하루를 마치는 시간에도 말씀으로 기도하고 감사로 끝내는 것이 날마다 드리는 삶의 예배입니다.
예배의 중심인 예루살렘이 훼파된 상황에서 제사장 엘리아십과 그의 형제들이 예배의 회복을 위해서 함께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부모가, 교회에서는 목사인 저부터 솔선수범해야 하지요.
그래서 느헤미야는 대제사장부터 일깨웠어요. 지도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따르는 사람들도 그 비전에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양문은 성벽의 가장 북쪽이라서 대적의 침입이 잦은 곳이었어요.
내가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대적인 사탄의 공격도 심해집니다. 그래서 망대에 올라가 대적을 감시하고 공동체를 보호해야 하지요. 우리가 매주 소그룹으로 모여 예배하는 것이 서로를 살피는 망대가 됩니다.
또한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가족 간의 삶을 나누는 것이 곧 가정의 망대이고, 매일 큐티하면서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는 것이 개인의 망대예요. 이렇게 예배만 회복되면 무너졌던 인생의 성벽이 다시 세워집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성벽 재건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네요.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해요.
드고아의 귀족들은 어문 공사에서 자기 몫을 분담하지 않았어요. 직분이 높고 가진 것이 많은 귀족이라도 주의 역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수치를 당하게 되지요. 제가 섬긴 우리들 교회는 학교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리기에 매주 수요일과 주일마다 카펫을 깔고 치우고 수천 개의 의자를 놓고 치우곤 합니다.
평일에 남학생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을 성도들이 사용하려니 자기 집 화장실보다 더 열심히 청소해요. 그런데 이 힘든 일을 귀족들이 하겠습니까? 돈도 명예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인데, 우리는 조금만 높아지면 귀족주의에 빠져서 힘든 일은 멀리 하려고 하지요.
직분만 내세우면서 주님의 일을 분담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자손에게 주실 복을 빼앗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는 일임을 기억해야 해요.
적용질문
-나의 사건을 예수님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으로 끝나는 구원의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나요?
💌함께 일어나 공동체를 중수하려면
둘째_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6절부터는 옛 문의 중수 과정이 나옵니다. 옛문을 중수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가치관을 다시 세우는 것이에요. 지켜야 할 전통은 잘 살리고 고정관념은 버리는 것이 옛문의 중수입니다. 버릴 것과 지킬 것을 잘 분별하려면 들보을 얹고 문짝을 달고 빗장과 자물쇠를 갖추는 사소한 일부터 잘 살펴야 합니다. 사소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8절을 보면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과 향품장사 하나냐 등이 넓은 성벽을 중수합니다. 당시 최고의 직업을 갖고 돈을 잘 벌던 이들이 성벽 중수에 동참합니다. 드고아의 귀족들은 주님의 일을 분담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부자 금장색과 향품 장사를 보내 개혁에 힘을 실어주세요.
세상에서 무시당해도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를 위해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을 다 보내주십니다.
11절에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화덕 망대를 중수하였고 라고 해요. 구체적인 이름이 없이 그저 한 부분이라고만 되어 있네요.
아마도 뭐라고 말하기 힘든 한 부분이겠죠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하기 힘든 한 부분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어요.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한 부분,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위해 드러낼 수 없는 한 부분이 있죠.
저는 큐티를 하면서 자기 삶을 오픈하는 것이 살아나는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오픈하지 못하는 한 부분도 있어요. 저도 평신도 시절에는 오픈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어요.
제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에 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랬지요. 그런데 평신도 시절과 목사 시절에는 또 종류와 장르가 또 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모든 것은 구원을 위해서 오픈을 해야 되고 구원을 위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솔직함이 다는 아니지요. 어떤 부분은 오픈하고 어떤 부분은 하지 말아야 할지 분별이 필요합니다. 오픈을 잘해야 나도 살아나고 나 때문에 살아나는 사람도 있고 또 지체도 생깁니다. 오픈하는 사람도 오픈했더니 나를 무시하더라 그런 마음으로 상처를 받는다면 아니한만 못한 오픈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구원에 초점이 맞춰 있는 거예요. 하면서 자랑이 되면 안 되고 하고 나서 상처를 받아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적용질문
-나는 어떤 모습으로 가정과 공동체의 성벽을 중수하고 있나요?
-우리 가정과 교회는 차별 없이 섬기는 공동체입니까?
«공동체 고백_믿음의 성벽 쌓기»
믿음의 공동체에서 딸의 구원을 위해 섬기며 구속사의 말씀으로 믿음의 성벽을 쌓아가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모태 신앙인인 저는 청소년기에 술과 담배, 일탈을 권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했어요. 교회를 나가고 하나님을 믿으니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씀의 가치관으로 살기보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았지요.
이후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공에 눈이 멀어 음란을 즐기고 학연과 지연과 돈을 우상 삼아 지내니 제 믿음의 성벽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주를 위해 사용하면 된다는 헛된 신념으로 죄 짓는 것을 합리화하면서 성공의 성벽을 쌓아 저를 드러내고자 했어요.
아내는 성공에 목매며 술과 음란에 빠진 저를 보며 힘들어 했고요. 두 딸도 저와 아내의 불화를 보며 정서 불안과 공포에 떨었어요.가정의 제사장으로 1절 말씀처럼 양문을 세워 거룩한 가정을 세우고 가족을 주께로 인도해야 하는 사명을 잇는 제 불순종의 끝은 외도와 사업 실패였지요.
그럼에도 아내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속사의 말씀으로 양육해 주셨어요. 또 들은 말씀을 바탕으로 내 죄를 회개하고 공동체의 죄를 고백하며 가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도록 변화시켜 주셨답니다.
현재 큰 딸은 과거 트라우마로 교회를 떠나 있지만 주님이 저를 살려주셨듯이 큰 딸도 돌아오게 하실 줄 믿어요. 딸의 지적과 비난을 잘 듣고 인정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소원해요.
저의 적용은
날마다 큐티한 뒤 큰딸의 구원을 위해 5분간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이틀에 한 번씩 집을 청소하고 분리 배출을 하겠습니다.
뜨거운 연단의 풀무망대를 지나고서 13절에는 골짜기 문을 중수합니다. 눈물의 골짜기 문에서 더럽고 비참한 분문까지 1천 규빗이나 되는 긴 성벽을 중수했다고 해요.
내가 고난의 풀물을 지나면서 옛 것을 다 내려놓고 성별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더 낮아지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성벽 재건 과정을 보면 하나님은 신분, 혈통, 직업을 따지지 않고 다양한 사람을 골고루 사용하세요. 서로 비교하고 차별하라고 빈부, 신분, 성별의 차이를 주신 게 아니지요.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서 서로를 세워주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상대방을 통해 내 모습을 보고 조건을 떠나서 서로를 양육하는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립니다. 주님
오늘 성전 건축의 목적,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고 하십니다. 이 거룩을 위해서 양문의 예배가 회복되게 해 주시옵소서.
개인 큐티와 생활 예배, 공예배가 회복되고 복음을 전한 후에도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함으로 어문을 중수하기를 원합니다. 아직도 사람을 가리고 판단하는 저희의 귀족주의와 고정관념을 무너뜨려 주시고, 편견과 집착을 버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게 많아서 뜨거운 망대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이 망대에서 영적 통찰력을 얻고 신분과 출신, 성별을 넘어서는 구원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영육간의 질병과 상처로 1천 규빗의 시간을 보내며 고난의 풀물을 지나는 지체들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겸손한 환경을 통해 구속사가 깨달아져 영육의 성전을 다시 중수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일예배_파손된 성전을 수리하라❤️🩹
0715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내가 여기서 이럴 사람이 아닌데🏡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 #107 고쳐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