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는 어찌하려느냐<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4.09.13 본문 : 예레미야 5:20-31
20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23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26 내 백성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이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27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28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하니
29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예레미야 5장 20절에서 31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마지막에는 어찌하려느냐 하시는 질문에 응답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마지막에는 어찌하려느냐의 질문에 응답하려면 첫째_경고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유다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21절에 기록된 대로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여기서 지각은 마음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즉 이들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없었어요. 그러니 말씀을 들어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여호와의 손길을 볼 수도 없었던 거예요.
예레미야보다 100년 정도 앞서 이사야 선지자도 백성에게 가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고 외쳤지요.
우리 눈과 귀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잘 보고 들으라고 주신 것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만 보고 들으면서 하나님의 일에는 무관심한 채로 내 일만 하니 어떻습니까?
눈과 귀를 지으신 분이 기가 막히실 따름이죠. 그러니 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떨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래로 바다의 경계를 지으심으로 자연의 질서를 정해두셨지요. 이렇듯 내게 줄로 재어 주신 구역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분수를 아는 사람은 거센 파도 같은 사건이 찾아와도 넘침이 없습니다.
부부 사이와 부모, 자녀 사이의 관계라 할지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어요. 친구와 이웃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경계를 알고 자신의 분수를 지키는 사람은 타인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섬김은 남을 편안하게 해주지요. 왠지 모르게 불편한 사람은 말과 행동, 외모 등에서 지나침이나 부족함이 있을 때가 많지요. 경계를 잘 지키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23절에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갔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그들의 죄 때문에 가뭄이 오래 지속되고 추수마저도 가로막힙니다. 25절에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하지요.
그러므로 나에게 좋은 곳이 오다가 막히게 된 원인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탓할 게 없어요. 내 자리에서 때에 맞게 순종해야 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오로지 그 때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패역의 또 다른 모습이에요.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주의 은혜를 모르니 허락하신 때에 불순종하면서 경계를 넘어서는 거예요.
주님이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기에 계절에 맞게 과실이 맺히는 것이지요. 여름의 뙤약볕, 가을의 늦은 비, 겨울에 한기를 모두 겪어야만 열매가 맺힙니다.
적용질문
-내 눈으로 보아야 할 것과 귀로 들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내 자리에서 경계를 지키면서 허락하신 때에 순종하고 있나요?
마지막에는 어찌하려느냐의 질문에 응답하려면 둘째_속임이 가득한 내 악을 보아야 합니다.
26절부터는 이스라엘이 좋은 것을 스스로 가로막았던 구체적인 죄가 열거됩니다. 당시 백성 중에는 새 사냥꾼처럼 덫을 놓아서 사람을 잡는 악한 짓을 일삼는 이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번창하고 거부가 될 정도로 부유했지만 그 모든 것은 속임이 가득했기 때문이었지요. 자기 이익을 위해 봉사를 공정하게 하지 않고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전혀 보장해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런 악인들 때문에 법이 왜곡되고 음모와 속임수가 상식이 되어 버렸지요. 물론 우리가 살다 보면 살찌고 윤택해질 수도 있겠지요.하지만 내가 있는 곳이 창대해져서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꼭 좋아할 일만은 아니지요. 속임이 가득해도 창대해질 수가 있어요.
창대해지면 그걸 유지하기 위해 공정하고 공평하게 판결하지 않는 게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겸손한 환경이 축복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악으로 점철된 유다 사회를 보시며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29절에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 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반문하십니다. 공평하지 않은 판결에 대해 단호히 벌하시겠다는 거예요. 죄인을 사랑하시지만 그 죄는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잘 드러납니다.
따라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100% 옳으신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것이에요. 그걸 알면 하나님이 나의 악에 대해 책임을 물으셔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적용질문
-이 땅에서 번창하고 싶어서 행하는 속임수는 무엇입니까?
-내 곁에 연약한 지체들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내 권리만을 주장하지는 않나요?
《공동체 고백_우연은 없어》
일하던 병원이 문을 닫는 고난 앞에서 주님보다 물질을 더 의지한 죄를 회개하고 구원에 대한 애통함도 회복했다는 한 청년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병원에서 근무할 때 좋은 원장님을 만나 높은 연봉을 받으며 시간적 물질적으로 여유로웠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하나님보다 돈을 많이 주는 원장님을 우상으로 여기게 되었죠.
당시 저의 관심은 온통 병원의 매출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영양제를 더 팔 수 있을까 고민하며 환자들에게 값이 더 나가는 주사를 맞도록 유도하기도 하였어요. 말씀의 가치관이 아닌 세상 가치관에 따라 겉으로는 선한 척했지만 제 이익을 얻으려는 이기심으로 가득했죠.
그런 제 모습을 두고 보실 수 없으셨는지 하나님은 병원이 문을 닫게 하셨어요. 한순간에 우상 같은 병원과 원장님이 사라지자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지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고난이 오니 말씀이 제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렸어요.
25절 말씀처럼 저는 내 원하는 환자들을 병원 매출을 올려줄 수단으로만 여긴 죄와 허물을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직장 고난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환경임을 인정할 수 있었지요, 이익과 욕심을 내려놓으니 가족에 대한 구원의 애통함도 생겼어요.
그 후 저는 청년부 소그룹 리더로 세워졌어요.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자고 날마다 외쳐주는 공동체에 속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말씀의 가치관에 따라 제게 맡기신 영혼 구원의 사명을 잘 감당할게요.
저의 적용은
매일 밤 자기 전에 청년부 소그룹 지체들의 기도 제목을 보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통화하며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여호의 말씀을 전해야 할 선지자들은 자기 말로 거짓을 예언하며 평안을 외쳤습니다. 또한 제사장들도 제멋대로 가르치고 자기 권력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럼에도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겼습니다. 우리가 거짓 예언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누리는 영광이 확실히 다가오지 않기에 또 그것이 축복인 줄 모르기에 평안을 외치는 거짓말만 듣고 싶고 고난 이야기는 듣기 싫은 것이죠. 노예 근성만 있고 주인 의식은 없다 보니 힘 있어 보이는 권력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그 밑에서 안주하려 들지요.
이것이 인간의 죄성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그저 이 세상의 연장선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다 보니 천국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어요. 땅의 것에만 집착하니 귀가 있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눈이 있어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두루미에게 천국에는 고동이 없다고 말하니 두루미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해요. “그런 천국엔 너나 가라” 고동이 먹이를 의미하거든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의 삶은 유한합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하시는 주님의 질문을 마음에 새기고 내 경계를 지키며 때에 맞는 순종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루를 보내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드릴게요. 주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저희를 위해 오늘도 외쳐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일을 보고 들으라고 눈과 귀를 주셨는데, 나의 일을 하느라 내 몸을 쓰며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주께서 정해주신 경계를 넘어서고 오로지 때에만 관심을 갖다 보니 주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저 스스로 가로막았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줄로 재어 주신 구역이 실로 아름다움을 고백하며 나의 주제와 분수를 알아 지체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께서 경고하신 유다 사회의 모습이 오늘 이 나라 안에도 있습니다. 이 나라에 입법사법행정기관이 주님을 두려워함으로 공정하게 판결하고 다스리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악법이 통과되지 않게 막아주시고, 이 구원의 일을 할 하나님을 경외하는 위정자를 세워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일예배_간구하매 들으셨으니
새벽큐티_ 김현우 목사
0913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여러분 배 아프세요?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 #111 후한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