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로 집을 세우는 왕<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4.10.18 본문 : 예레미야 22:10-19
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
11 여호와께서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 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12 잡혀 간 곳에서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1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예레미야 22장 10절에서 19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불의로 집을 세우는 왕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불의로 집을 세우는 왕은
첫째_자기의 필요를 위해서만 옵니다.
예레미야는 10절에서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고 해요. 여기서 죽은 자는 요시야 왕을 의미하지요. 요시아가 무깃도 전투에서 전사하자 백성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퍼했어요.
요시아가 유다의 회복을 위해 일했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예레미야는 이 요시아를 위해 애통해하지 말고 그의 아들 살룸을 위해 울라고 해요. 살룸 즉 여호아하스는 요시아를 이어 왕이 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애굽 왕 바로 느고에 의해 애굽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12절에 잡혀 간 곳에서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해요. 그가 포로로 끌려간 이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기에 그를 위해 울라고 하는 거예요.
요시아는 비록 전사했지만 천국에 갔어요. 그 아들 살룸이 애굽과 싸우다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복수의 감정만 남아 있었겠죠. 게다가 당사자인 자신도 애굽으로 끌려가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니 그야말로 불쌍한 사람인 거예요.
우리 가정도 그래요. 요시아 같은 믿음의 부모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섬기다 천국에 가는데, 정작 그 자녀가 주님을 외면하며 세상을 향한 분노로 우상을 섬기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러니 여러분 이 세상에서 배운 게 없고 가진 게 없는 사람이 불쌍한 게 아니라 가진 것이 많아도 예수를 모르고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이 불쌍한 거예요.
복음을 전해도 그것을 외면하면서 자아로 가득 차서 살아가는 그 사람을 위해 울어주어야 하는 겁니다. 내가 정말 울어주어야 하는 사람 요시아가 아닌 살룸인 거예요.
적용질문
-나는 누구를 불쌍히 여기나요? 내가 애통하며 눈물로 기도해 줘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불의로 집을 세우는 왕은
둘째_자기만 위하는 화있을진저의 인생을 삽니다.
요시아의 아들 살룸이 애굽으로 끌려가고, 그의 이복 형제 여호야김이 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이 여호야김은 11년간 통치하면서 온갖 악을 저지릅니다.
13절에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해요.
그는 왕궁을 크게 짓기 위해서 불의를 서슴지 않았어요. 노동의 대가인 품삯도 주지 않았죠. 그는 오로지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합니다.
자기 형제가 포로로 잡혀간 마당에 화려한 궁궐을 짓고 나라가 무너지게 생겼는데, 백성에게 노욕의 짐을 쥐웁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불의를 행한 왕입니까? 바로 이 여호야김이 예레미야에게도 가장 악독하게 군 왕이기도 해요.
이렇게 성경적 가치관이 없으면 오로지 자기 자신만 알기에 사회를 향한 책임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짓고 만들고 입히고 칠하며 온갖 열심을 내면서 사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늘 아파트 평수로 경쟁하고 자동차 크기나 배기량을 비교하며 세상에서 잘 되고 높아지는 꿈을 꾸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어느 날 졸지의 사건이 찾아오면 망할 수밖에요. 하나님이 이런 여호야김을 향해 네 아버지 요시아를 좀 보라고 하세요. 15절, 16절에 기록된 요시아는 정의와 공의를 행해도 부족함 없이 살았을뿐더러 도리어 형통했다고 해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했기에 형통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알았기에 가능했지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그의 원한을 풀어주려면 하나님부터 알아야 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우선입니다.
내가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깨닫게 되면 조금씩 실천하게 되지요. 그래서 큐티의 꽃이 적용이잖아요. 손과 발이 가는 적용, 즉 십자가 지는 적용은 말씀을 제대로 묵상하고 깨닫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개혁이에요.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길도 여기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형통입니다.
적용질문
-내가 나를 위하여 모으고 넓히고 경쟁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정의와 공의를 행하고자 먼저 말씀 묵상에 힘쓰시겠습니까?
《공동체 고백_나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 번째 결혼 생활을 하시는 어머니와 남은 가족의 구원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겠다는 한 청년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제가 어린 시절 어머니는 주일마다 저와 남동생을 교회에 데리고 가셨어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매일 술을 드셨고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다른 남자를 만나시다가 제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와 이혼하시고 그 남자와 재혼하셨어요.
그래도 물려주신 믿음의 유산이 있어서인지 저는 고등학생 때 믿음의 공동체로 인도되어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며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달리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셨어도 세상에서 잘나가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셨고, 재혼하신 분과도 재차 이혼하셨어요. 이후 주일에는 일하시거나 휴일로 사용하시며 애굽 같은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가셨죠.
저는 그런 어머니께 큐티인을 건네드렸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냄비 받침대로 쓰셨어요. 처음엔 분이 났는데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제가 어머니의 구원을 위해서라기보다 14절 말씀처럼 칭찬받고자 어머니를 전도하려 한 것이 깨달아져 회개했어요.
어머니는 현재 또 다른 분과 세 번째 결혼 생활을 하고 계세요. 저는 어머니와 새아버지의 집, 그리고 친아버지와 남동생 집의 구원을 위해 큐티인을 보내고 있어요. 저희 가족이 다 같이 천국에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며 애통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저의 적용은
이틀에 한 번씩 부모님께 전화해 친절히 안부를 묻겠습니다.
제 큐티 책에 가족을 위한 기도 제목을 적어두고 매일 큐티한 뒤 가족 구원을 위해 5분씩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요. 아무리 아버지가 폭력을 행해도 이혼하고 또 나가서 재혼하셔도 거기 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우리 청년의 간증을 통해서 또 한 번 들었어요. 그러나 이 집에 남은 자인 한 청년의 이 기도가 응답되어서 이 모든 식구들이 구원되기를 기도해 주시기를 바래요.
17절에서는 여호야 김에 대해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고 질책합니다. 결국 그로 인해 여호야 김이 죽은 이후에 아무도 그의 죽음에 애도하거나 통곡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시아의 죽음에 백성이 크게 애곡한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지요. 게다가 그의 시체는 예루살렘 문밖에 던져지는 모욕을 당하게 된다고 해요. 한 나라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짐승의 시체처럼 버려지는 거예요.
북이스라엘의 이사벨도 상하궁에서 폼나게 살았지만 개들이 그녀의 시체를 먹었잖아요. 지옥까지 안 가도 이미 이 땅에서 지옥을 살다가 지옥에 간 인생인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지금 공동체 안에 있다고 해서 공동체의 신앙이 나의 신앙이라고 착각하면 안 돼요. 지금 내 삶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말씀을 통해 내 눈과 마음에 있는 탐욕을 보고 가지치기 하면서 가는 것이 내가 개혁되는 길이에요.
나 한 사람이 말씀으로 변화된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 가정이 변화되고 공동체와 나라가 변화됩니다. 그래서 나 한사람이 바로 나라인 것입니다.
나의 변화, 나의 개혁이 나라의 변화, 나라의 개혁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나의 자리에서 주님을 알아가는 형통의 인생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울어야 할 것을 위해 울지 않고 내 연민에 더 갖지 못한 것에 울던 저입니다. 성경적 가치관이 없으니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이 동해 끝없이 경쟁하면서 살았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집을 짓고 창문을 만들고 백향목으로 상하궁을 지으면서도 그것이 형통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 내 죄 때문에 애통해 하며 내 곁에 있는 의식과 지체들의 구원 때문에 눈물 흘리길 원합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까 봐 안타까워하며 눈물로 기도하오니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말씀을 통해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형통을 얻게 도와주시옵소서. 묵상하고 깨달은 것들을 적용함으로 나의 인격과 삶이 변화되는 참 개혁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공동체 안에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지체들의 형편을 변호하고 신혼하여 주심으로 그들이 주님을 만나 형통한 인생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일예배_패한 후 15년
새벽큐티_ 송민창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A8R4TnTaHJI?si=OEP5gGWiyGAcoH6q
1018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결혼은 과학일까?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 #114 눈을 여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