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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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떠난 결과<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4.11.08 본문 : 사무엘상 4:12-22

12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13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14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15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16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17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19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사무엘상 4장 12절에서 22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삶이 하나님을 떠난 엘리의 마지막처럼 되지 않기를 원해요.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에 심판을 당하지 않으려면
첫째_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12절에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를 덮어쓰고 실로 이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빼앗긴 언약궤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리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어요.

그래서 베냐민 사람이 달려나와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옷을 찢으며 엘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데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동안 엘리는 여러 차례 심판의 경고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두려워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졌을 것입니다.

13절에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고 해요. 엘리는 언약궤가 여호와의 지시 없이 함부로 지정한 장소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장로들이 옮기자고 했을 때 그것을 말려야 할 책임이 있었죠. 그런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영적 무능으로 인해 너무 초조했을 겁니다. 그 결과 심판의 때가 다가온 것이죠. 때가 이르기 전에 깨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엘리가 경고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더라면 언약궤를 옮기지도 않고 빼앗기지도 않았을 텐데 회개가 안 되니까 두렵기만 하고 결국 그 두려움이 현실로 찾아오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두렵고 떨리는 일이 있다면 무조건 회개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죄 때문에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불안이 찾아오는 거예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으면 전쟁은 이겨야만 하고, 입시는 붙어야만 하고 병은 나아야만 하는 것이기에 늘 인생이 두렵지요

어떻게든 고난을 피하려고 요행을 바라면서도 회개는 하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모습인지 엘리를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베냐민 사람이 패배의 소식을 전하니 온 성읍이 부르짖었다고 하는데, 이때의 부르짖음은 언약궤를 가지고 전장에 들어갈 때 질렀던 함성과 대비되지요. 잘못된 언약궤 신앙에 기초한 열광적인 함성이 졌다는 소식과 함께 또 다른 비참한 부르짖음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적용 질문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큐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열심히 사람 찾아다니고 세상 방법을 구하며 요행을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떠난 결과의 심판을 당하지 않으려면
둘째_심판의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고 돌이켜야 합니다.

15절에 보니 엘리는 98세 노인으로 시력도 거의 잃고 늙어서 거동이 불편한데도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절대적인 확신과 가치관이 없었기에 언약궤를 내주고 나서는 후회했습니다.
아들에 대한 경고도 들었지만 실천을 못했어요. 날마다 뒷북치고 후회하는 인생을 사는 거예요.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텐데 자식을 낳아보니 아들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진 거예요. 믿음의 실체가 드러난 거죠. 16절부터 18절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하고 살육당하고, 엘리의 두 아들이 죽고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18절에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내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주었기에 굉장한 책임과 부담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죠.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40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요.
40년 사역을 감당했다는 것은 엘리가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였음을 보여주는 대목 같기도 합니다.

그 40년 동안 블레셋이 쳐들어왔다는 기록이 없어요. 그래서 편안 세월을 지내다 보니 육체의 눈이 어두워지고 영적인 눈까지 어두워졌습니다.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기면서 그들의 잘못을 금하지 않았죠. 엘리는 40년 동안 대제사장 역할을 하고도 끝이 좋지 않은 대표적인 지도자로 남았습니다.

성경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고 상세하게 그의 죽음을 표현한 것은 괜히 남겨놓은 기록이 아니지요. 잘못된 지도자, 잘못된 부모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예로 보여주는 것이에요.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엘리처럼 표현되지 않을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읽어야 해요.

어떤 말씀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여기고 회개할 것을 찾을 때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적용질문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 말씀대로 적용이 안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심판의 말씀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여기며 회개할 것을 찾나요?

《공동체 고백_기복의 언약궤 신봉자》

병이 낫고자 기도원을 다니며 기복에 언약궤를 신봉했지만, 고난의 한계 상황에서 큐티하는 공동체로 인도되어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묻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어린 시절 유난히 몸이 약해 갖은 질병에 시달렸어요. 병원에 다녀도 잘 낫지 않자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신유 은사로 유명한 기도원을 찾아가셨지요. 그때는 어려서 은사만 찾아다니는 신앙생활이 잘못된 것인 줄도 몰랐어요.

그곳에서 기적과 치유를 목격하고 유명인과 목회자들도 방문하니 이곳에 하나님의 궤가 있으리라 확신했지요. 하지만 당시 교회에서는 그것이 성경적 신앙은 아니라고 지적했어요. 저는 그럼에도 엘리 제사장이 언약궤를 전쟁터로 보내고 떨며 기다리듯 마음속 갈등을 외면한 채 기도문을 찾았어요.

그러자 믿음은 점점 식어가고 일이 조금만 틀어져도 내가 언약궤를 가지고 나갔는데 이게 어찌 됨이냐 하면서 한탄하기에 바빴죠. 하지만 기도원을 다녀도 고난은 계속되었어요.

그러다 결국 18절 말씀에 엘리의 목이 부러지는 것 같은 한계 상황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큐티하는 공동체로 인도해 주셨어요. 그리고 예배와 말씀을 통해 회개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는 저의 악한 마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22절 말씀에 엘리의 며느리처럼 영적 무지와 우상숭배로 제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게 한 죄를 지었음도 깨닫게 하셨어요. 이제는 다른 언약궤가 아닌 오직 성경 말씀이 진리임을 믿고 하나님께 물을게요. 내 생각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말씀으로 권면하고 기도하는 공동체에 속해 인내하며 살겠습니다.

저의 적용은
기복의 언약궤를 다시 붙들지 않도록 날마다 말씀 묵상한 내용과 적용을 큐티 책에 적겠습니다.
무엇을 결정해야 할 때 교회 소그룹 모임에 구체적으로 나누고 지체들의 권면을 따르겠습니다.

2000년 7월에 큐티 선교회 창립 예배를 드리던 날 큐티 본문이 바로 사무엘상 4장 말씀이었어요.

처음으로 선교회를 시작하고자 하는데 하필 엘리가 목이 부러져 죽었다는 본문을 주시니 수상하지 않습니까?

아침에 큐티를 하면서 엘리가 저주받을 죄를 금하지 않았기에 목이 부러져 죽은 것처럼 제 속에 금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엘리처럼 죽기를 원한다고 적었어요.

엘리가 40년이나 사역을 했어도 하나님의 괘를 빼앗기고 자식들도 죽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는데, 제가 오랫동안 큐티 사역을 하고도 엘리처럼 죄를 방관하고 나태해진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안에 남아 있는 엘리가 죽고 사무엘이 등극하기를 원한다고 관습과 고정관념이 죽고, 큐티 선교회를 통해 말씀을 묵상하는 운동이 일어나길 원한다고 적용했습니다.

그리고 벌써 24년이 되었네요. 저의 기도처럼 큐티 선교회를 통해 소리 없는 개혁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도 같고 그러나 앞으로 더욱더 이루어져 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니 큐티는 본문이 좋고 나쁜 것이 없어요. 어떤 것도 나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으면 여러분들이 기복적으로 읽기에 좋은 본문, 나쁜 본문 이렇게 따지는 거 이것 자체가 기복적인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인데 좋은 본문, 나쁜 본문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는 것이 자다가도 떡이 생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기는 사건을 허락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언제라도 깨닫고 돌이키라는 것이죠.

오늘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음성으로 듣고 장차 받을 환난을 예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며 여전한 방식으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복 신앙이 너무나 뼛속 깊이 있게 아닌 걸 알면서도 엘리처럼 언약궤를 보내는 결정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두려운 소식을 전해듣고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는 것 같은 사건을 겪게 되는 것은 참으로 내 삶의 결론이면서도 엘리 집안의 축복이라고 여겨져요. 무너진 것만큼 세워지고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지 않게 늘 전적으로 부패한 구제불능인 우리 자신을 보고 오직 예수만이 구원이신 것 알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어떤 말씀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고 돌이킬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일예배_여전한 산당제사

새벽큐티_정지훈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A1ua4hMj3u0?si=nUAKjgn9jnFUH0zM

1108큐티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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