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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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4.12.02 본문 : 사무엘상 17:55-18:5

55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아감을 보고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묻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냐 아브넬이 이르되 왕이여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
56 왕이 이르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더니
57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의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 앞으로 인도하니
58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냐 하니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라
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5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사무엘상 17장 55절에서 18장 5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위 지체들을 내 생명같이 사랑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려면
첫째_참 신앙의 친구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골리앗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가지고 돌아온 다윗을 보고서 사울 왕은 58절에서 소년이요 누구의 아들이냐라고 묻습니다. 이런 질문은 보통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하는데, 사울이 다윗을 처음 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울이 악령에 들려 괴로워할 때 수금을 타서 고쳐주었고,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다윗에게 갑옷도 벗어주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네가 누구냐 묻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아들 요나단은 왕자의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예수님의 조상 다윗을 알아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어요. 믿음의 친구를 알아보느냐 알아보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참 사랑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요나단은 다윗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갑자기 생명같이 사랑한다고 나섭니까?

요나단도 다윗을 지금 처음 본 게 아니죠 왕궁에 드나들면서 수금을 탈 때부터 다윗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과정에서 너무 놀란 것입니다. 그의 믿음과 신앙을 알아본 것이죠.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을 죽는 날까지 사랑했어요. 그러나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 사울을 떠나지도 않았고 같이 전쟁에 나가서 죽었어요. 요나단이 끝까지 지킨 것은 이상한 자기 아버지입니다.

남남인 요나단과 다윗도 서로를 알아봤는데, 사울은 자기 아들 요나단의 믿음을 못 알아봅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와 형들도 다윗의 믿음을 못 알아봐요. 그러니까 내가 믿음이 좋다고 다 나를 알아보는 것은 아니에요.

사실 다윗은 양치기에 불과한 신분 아닙니까? 반면에 요나단은 왕자로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로열 패밀리입니다. 그럼에도 그 둘이 신앙의 친구가 되었어요. 이렇듯 신분과 나이에 상관없이 믿음의 친구를 볼 수 있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여러분도 요나단이 다윗을 알아본 것처럼 신앙의 친구를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요.

적용 질문
-지금 내 곁에 있는 믿음의 형제는 누구인가요?
-날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지체들과 참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까?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려면
둘째_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18장 2절을 보니 그날의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라고 해요. 사울이 다윗에게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않고 왕궁에 머무르게 한 것은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3절에 보니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해서 더불어 언약을 맺었다고 하네요. 요나단은 왕자로서 왕궁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결혼을 하고서 인생이 너무 외로워 하나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죠. 요나단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나단은 왕위가 보장된 사람이죠. 두 사람은 장차 차기 왕이 되어야 하기에 한 사람은 죽어야 하니 사실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사랑은 이런 것을 다 뛰어넘습니다. 예수의 참사랑을 알게 되면 참사랑을 할 수 있어요.
다윗과 요나단의 짧은 교제를 성경에서 최고의 사랑으로 꼽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둘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요나단과의 사랑을 맛본 다윗이 그 사랑으로 평생 주의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면 말초적인 사랑밖에 모릅니다. 매일 같이 다녀야만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제 남편도 그렇게 저를 어디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자기와 같이 있기를 바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힘들면 제가 주님을 만났겠어요 이렇게 같이 있어도 한마음이 안 될 수 있고요.

따로 있어도 한마음이 될 수가 있어요. 생명같이 사랑한다고 거기서 끝나면 참 사랑이 아닙니다.
참 사랑은 내가 이 사랑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에요. 말로만 하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언약 관계는 의형제가 친형제 되는 것이 아니라 군신 관계를 말합니다.

반드시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는 뜻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앞으로 굳게 굳게 지켜주겠다 하면서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 할 때 도와주었어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그를 구하여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는 것이에요. 다윗도 이 약속을 지켜서 나중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끝까지 지켜주었습니다.

적용질문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어 생명을 내어놓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아내와 남편 이외에 자기 생명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참 지체가 있으신가요?

《공동체 고백_인간적인 사랑》

인간적인 사랑으로 가족의 자립을 방해한 자신의 잘못된 열심을 내려놓고 이제는 생명을 내놓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가정 주부였던 어머니는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저에게 살림을 맡기셨고, 저희 삼남매는 서로를 돌봐가며 자랐어요. 그 와중에 아버지는 사업도 접은 채 도박에 빠지셨지만 저는 도박만 아니면 아버지는 완벽한 분이야 라며 위안했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저는 인간적인 열심으로 살림과 일을 병행했어요. 결혼 후에도 친정의 모든 일을 챙기며 시간을 쏟는 저 때문에 남편은 친정 아버지를 미워했죠. 하지만 저는 다정하기만 한 친정 아버지와 혈기 있는 남편을 비교하며 오히려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첫 아이를 낳았을 무렵 우울증을 앓던 동생의 증세가 심해졌어요. 저는 어린 아기를 돌보면서 동생까지 챙기는 게 벅차 무척 괴로웠지요. 그런데 아이를 양육하면서 참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아기가 아무리 먹고 싶어 해도 몸에 나쁜 음식은 줄 수 없고, 가고 싶어 해도 위험한 곳은 갈 수 없게 하는 게 부모의 사랑임을 배웠죠.

그동안 제가 인간적인 사랑으로 친정 식구들을 위했던 행동이 결국 가족의 자립을 방해한 거예요.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는 18장 1절 말씀을 보면서 저의 인간적인 사랑과 열심 때문에 동생이 무기력해졌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요나단처럼 생명을 내놓는 사랑으로 친정 식구들의 구원을 위해 지혜롭게 행동하기를 원해요.

저의 적용은
친정 식구들을 돕기 전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저의 경계를 잘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내 열심을 내려놓고 체력을 잘 분배해서 육아하겠습니다.

4절에서 요나단은 자기가 입었던 겉옷은 물론 군복과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다 다윗에게 줍니다.
당시 옷은 곧 신분이었지요 그 말은 나는 너를 위해 왕자의 자리도 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을 유지하는 데 왕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버지 사울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을 거예요.그러니 아낌없이 왕위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 사랑은 신앙의 친구를 알아보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어 그의 생명을 내 생명처럼 여기는 데서부터 시작해요. 그럴 때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하게 되고, 언약의 사랑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의 간증을 주고받는 이 참사랑이야말로 세상의 사랑이 아니라 십자가를 경험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릴게요. 주님

사랑을 인간적으로만 생각해서 수많은 세월 헛된 감정을 쏟느라 너무 목이 마릅니다. 다윗과 요나단을 묵상하고 보니 하나님밖에 의지할 것 없는 이 두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애틋했을까 싶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가 악령이 들려 아팠고, 다윗은 아버지와 형들로부터 온갖 무시를 받으며 자랐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이 둘을 만나게 하시고 다윗에게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조상으로 그 험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참 사랑을 알려주셨어요.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인간적인 사랑에 너무나 목을 매고 있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시고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친구 삼아주신 주님의 그 사랑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주여 그 참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모두 참사랑의 주인공이 되어 어떠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라도 이 참사랑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일예배_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이태근 목사>

새벽큐티_류익현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R0JBjk3Yc28?si=9nplsWYmAxBkJGJL

1202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도대체 누가 옳을까요?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

117 이제가서 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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