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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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범죄하려 하시나이까<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4.12.04 본문 : 사무엘상 19:1-7

1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2 그가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3 내가 나가서 네가 있는 들에서 내 아버지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아버지와 말하다가 무엇을 보면 네게 알려 주리라 하고
4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5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7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고 요나단이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전과 같이 있었더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사무엘상 19장 1절에서 7절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시기와 질투로 범죄하지 않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말씀을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범죄하지 않으려면
첫째_생명과도 같은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1절부터 3절을 보면 사울이 그동안은 은밀하게 다윗을 죽이고자 했는데, 다 실패로 돌아가니 이제 공식적으로 그를 죽이려고 해요. 사울의 광기가 점점 최고조에 치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을 예수님도 겪으셨지요. 우리 아픔과 질고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고난 받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이 훈련을 받은 것이죠. 나보다 더한 고난을 미리 받은 예수님과 다윗을 보면서, 별 인생이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 고난의 여정에서 하나님은 생명과도 같은 친구 요나단을 허락하셔서 다윗을 변호 하게 하십니다. 요나단을 심히 좋아했다고 해서 그는 혈연을 넘어 효를 넘어 우정을 택합니다.

4절과 5절에서 요나단은 아버지 앞에서 다윗을 변호하지요 다윗 편을 드는 게 아니라, 그가 속한 진리의 편을 든 것입니다. 요나단은 우정을 선택한 후 아버지가 아닌 백성을 선택했어요. 다윗이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 가는데, 십자가를 지러 가는데, 이렇게 생명을 내놓는 친구의 변호가 아니였으면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라면, 주의 종이라면, 내가 십자가를 지러 가야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변호해 주는 한 사람의 친구를 허락하십니다. 한 사람 이상 반드시 있게 하세요. 만약 그런 친구를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힘이 없이 혼자서는 그 길을 갈 수 없어요.

그래서 반드시 말씀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통하는 친구가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시기별로 믿음의 분량대로 나에게 통하는 지체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분량대로 걸어오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적용질문
-여러분을 말씀으로 변호해 주는 생명과 같은 친구가 있나요?
-지체들이 반대하는 길을 혼자서 걸어가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범죄 하지 않으려면
둘째_질서의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6절에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해요. 요나단이 이렇게 멋지게 다윗을 변호하니까 사울의 마음이 갑자기 돌아섭니다. 그러더니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해요.

과연 믿을 만한 맹세입니낀? 사울의 인생을 쭉 보니, 그야말로 변덕의 대명사입니다. 맹세도 잘하고 말 바꾸기도 잘하고, 거짓말도 잘해요. 저는 사무엘상을 읽으면서 왜 사울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부분을 차지할까 생각해 봤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에 사울 같은 사람이 너무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옆 사람이 사울이거나 내가 사울이 것이죠. 우리는 다 사울처럼, 시기 질투가 충만하고,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지 않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가 깔려 있지 않나요?

지금 이 사울 때문에 다윗의 도피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이 도망자 신세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알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이런 사울을 보여 주시면서 우리 속에 거룩을 키워 가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죽이겠다 하다가 내일은 살리겠다 하면서, 기분에 따라 오락가락 하는 변덕을 참고 훈련해야 합니다.

한결같이 기분이 나쁜 사람, 한결같이 기분이 좋은 사람 옆에서는 훈련이 하나도 안 돼요. 늘 기분 나쁜 사람은 거기에 맞추면 되는데, 오늘은 나쁘고 내일은 좋은 사람이 제일 힘들지요. 그래서 변덕을 참는 것이 가장 힘든 훈련입니다.

반대로 요나단은 인간으로서도 친구로서 정말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에요. 그는 힘도 세고 활도 잘 쏘는 데다가, 전쟁에 나가는 것을 무서워하지도 않습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왕에게 직언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아주 용감한 사람이에요. 거기다 또 얼마나 다윗을 사랑합니까? 부드럽고 너그럽고 다정합니다.

신앙까지 있어 분별력 또한 갖추기에,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것을 분별했습니다. 자신은 왕의 아들이었지만, 양치기였던 다윗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겸손까지 갖추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시기하고 질투하기는 쉬워도, 사랑하고 인정하기는 너무 어렵지요.

어떻게 보면 다윗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요나단이, 마치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순종하신 모델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요나단은 영생을 바라보며, 이 땅의 왕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렇게 보여주었어요. 저는 천국에 가서 이 요나단 오빠를 참 보고 싶습니다.

적용질문
-내 주위에 변덕이 많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을 통해 내가 훈련을 받고 있다는 것이 인정되나요?
-나에게 사울과 같은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공동체 고백_어린이 큐티인》

크게 다투시는 부모님을 보며 무섭고 속상했지만, 하나님이 부모님 사이를 회복시켜 주셔서 감사드린다는 한 초등학생의 어린이 큐티인 묵상 간증이요.

가족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부모님이 차에서 크게 싸우셨어요, 아빠는 휴게소에서 내려 따로 가셨고, 저랑 동생은 무섭고 속상했지요. 저는 4절에서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에게 나쁜 일을 하지 마세요” 하고 좋게 이야기한 것처럼, 아빠에게 “엄마한테 먼저 사과 하셨으면 좋겠어요” 하고 문자를 보냈어요.

그리고 엄마한테도 “먼저 사과 하시면 좋겠다고 부탁드렸고”, 부모님이 이야기하시는 동안 저는 방에서 큐티하며 기도했어요. 부모님은 화해하고 지금까지 잘 지내세요. 부모님 사이를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저희 적용은
다른 사람의 잘못보다 제 모습을 잘 보고, 힘들 때만 큐티하지 않고 평소에도 잘할게요입니다.

(요즘 자기 결정권. 성적 자기 결정권을 부르짖는 이 시대에, 참으로 고급 원어를 쓰는 아이들 아닙니까? )

《공동체 고백_새싹 큐티인》

또 자신의 장난감을 마음대로 만지거나 퍼즐를 망가뜨리는 동생이 미울 때도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동생을 잘 돌보고 사랑하겠다는 다섯 살 어린이의 새싹 큐티인 묵상한 간증이예요.

저에게는 두 살 어린 동생이 있어요. 동생은 귀엽지만, 제가 아끼는 장난감을 마음대로 만지거나 완성한 퍼즐을 망가뜨리면 미워져요. 그럴 때 저는 속상한 마음에 화내고 소리를 지르며 부모님께 이르지요.

4절에서 요나단은 친동생도 아닌 다윗에 대해서 아빠인 사울 왕에게 잘 말해 주었는데, 저는 부모님께 동생이 밉다고 했어요. 오늘 요나단이 보여준 모습을 기억하면서 앞으로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소중한 동생을 잘 보고 사랑할게요.

저의 적용은
동생이 미워도 화내지 않고 부모님께 예쁘게 말할께요.

최고의 언어는 항상 회개의 언어입니다. 7절에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고, 요나단이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전과 같이 있었더라고 해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요나단이 다윗을 다시 앞에 세웁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을 몰라도 너무 모르지요. 어쩌면 그렇게라도 아버지를 믿고 싶었던 아들의 슬픔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시기와 질투가 누군가를 죽이려는 범죄함으로 나아가기까지 우리는 사울의 모습을 통해 얼마나 인간의 생각이 악한지 보게 됩니다. 사울이라서 그럴까요? 그런 모습들이 우리에게도 다 있습니다.

나는 요나단이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사울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나에게도 있는 사울과 같은 악한 모습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립니다. 주님

말씀을 듣고 믿으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해왔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저희에게 생깁니다. 배우자가 나를 죽이겠다고 들들 볶고 직장에서 어디 한번 죽어 보라고 들이 됩니다. 입만 열면 이혼을 외치고, 정말 살 수가 없는 하루하루입니다.

이럴 때 주님은 요나단 같은 변호자를 보내 주시며, 이 시간이 주님을 만날 때라고 하십니다. 생각해 보니, 아무리 주변에서 죽어라 죽어라 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도대체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기도하다가 매일 주님을 만납니다, 이것이 주님이 제게 허락하신 훈련임을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

다윗을 세우기까지 사울이 너무도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그 누구도 우리를 세우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임을 알고서, 원망과 시기와 질투를 그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주여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일예배_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이태근 목사>

새벽큐티_백준숙 초원지기

https://www.youtube.com/live/n0RrufJcSAA?si=cKsTKjtJHKBUPT_Q

1204큐티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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