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쁨의 좋은 소식 <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5.01.16 본문 : 누가복음 2:1-14
1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 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 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누가복음 2장 1절에서 14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듣고 또 들어도 기쁜 소식,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다시 듣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첫째_눈에 보이는 게 없어도 기다릴 때 듣습니다.
오늘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들어도 늘 기쁜 소식이죠. 그런데 1절에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족하라 하였으니라고 해요. 그때가 언제입니까? 1장 마지막에 언급한 세례 요한이 태어난 때입니다.
그때 아구스도는 왜 천하로 다 호족하라는 영을 내렸을까요? 아구스도는 수많은 정적을 제압한 후 로마 제국의 통치자가 되어 통치 수단의 하나로 호족 즉 인구 조사를 명령했어요. 만일 이 명령이 없었다면 요셉도 굳이 만삭이 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까지 가지는 않았겠지요.
그것도 그렇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요셉이 그 명령에 순종함으로 마리아와 호족하러 베들레헴으로 간 것이나 호족했으면 부부로 행세해도 되는데 출산 때까지 동침하지 않고 기다린 것이나 이 모두가 하나님의 구속사,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입니다.
4절 5절에서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는 함께 호적을 하려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이동하지요. 그리고 해산할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7절에 왜 요셉은 그 귀한 첫 아들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을까요? 아마도 호적 때문에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여관에 있을 곳이 없어도 그렇지 말이나 소에게 먹이는 염을 담는 구유에 갓난 아기를 뉘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내가 예수를 믿어도 그럴 수 있어요. 뭔가 기쁜 소식이 계속될 것 같지만 정작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그래요. 인류 역사에 더 없이 크고 기쁜 사건이지만 그 탄생의 현장은 이토록 보잘것없고 비천한 데서 이루어졌습니다.
적용 질문
-내 가족, 내 이웃이 구원되는 그날까지 내가 동침하지 않고 잘 기다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예수를 믿고 나서 듣게 된 가장 큰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둘째_제 자리에서 충실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듣습니다.
베들레헴은 해발 600m의 고산지대였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즈음은 추울 때였어요. 그런데 8절에 낮도 아닌 밤에 밖에서 목자들이 자기 양떼를 지켰다고 해요. 그때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그 목자들이 크게 무서워합니다.
우리 인간은 죄인이기에 천사만 보아도 두려워합니다. 마치 죄를 지은 범인이 경찰을 보면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아마 목자들도 그러했겠죠. 그럼 이들은 무엇이 그토록 무서웠을까요?
당시 목자는 신분이 지극히 미약한 자들이었어요. 주의 사자를 한두 번쯤 대한 선지자나 대제사장이라면 몰라도 추운 겨울 밤에 양 떼나 지키는 비천한 목자들이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그들이 가장 먼저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대단한 자리에 있고 대단한 일을 해서 기쁜 소식을 먼저 접한 게 아니에요. 한결같이 자기 직무에 충실한 자들이 항상 응답받고 최고의 평강을 누립니다. 주인이 맡기신 양떼를 잘 지키는 정직한 자들에게 주의 영광이 두루 비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12절에 주의 사자는 왜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했을까요? 우리가 원하는 표적은 뭔가 하늘이 쫙 열리고 바다가 쫙 갈라지며 웅장하게 메시아가 나타나는 모습인데, 강보에 쌓여 말 구유에 뉘여 있는 아이가 표적이라니요.
하지만 여러분 예수님이 화려한 궁궐 안에서 나셨다면 비천한 목자들이 그 모습을 볼 수나 있었겠습니까? 출입조차 허용되지도 않았겠지요. 그래서 그 구유에 뉘여 있는 예수님이야말로 목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표적인 거예요.
주님이 낫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으니 누구와도 편안하게 교제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대단한 곳에 계셨으면 우리가 다가가기라도 했을까요?
적용질문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내가 충실히 지켜야 할 양떼는 누구 혹은 무엇입니까?
-내게 주신 표적은 무엇인가요?
《공동체 고백_청소년큐티인》
충동 조절이 어려우신 어머니의 폭력으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지만 하나님의 가정을 지켜주심을 믿고 어머니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한다는 한 고등학생의 청소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어머니는 ADHD와 우울증으로 충동 조절이 어려워 많은 빚을 지셨고, 자주 새벽에 들어오셨어요.
또 자신과 가족에게 폭력을 행하며 아버지와 종종 몸싸움을 벌이셨죠. 저는 그때마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어요.
고등학생이 되자 저는 먼 지방의 대안학교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아버지는 제게 전화로 집안 경제 사정과 어머니의 일들을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런 아버지를 무책임하다고 여기며 연락하지 마세요.이럴 거면 저를 왜 낳으셨어요? 하고 화를 냈어요.
그리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일탈하며 가정을 원망했지요. 집에 돌아온 날 저는 아버지의 작은 지적에 화를 참지 못해 아버지를 위협했고, 이 일로 교회 청소년부에서 저의 가정에 심방으로 오셨어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폭력이 두려워 제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셨다며 처음으로 속마음을 드러내 사과하셨지요. 저도 아버지께 저의 행동을 사과드리고 다시는 같은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렸어요.
7절 말씀처럼 낮고 천한 말 구유같이 느껴지는 지금의 환경이지만 저도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싶어요. 가족만 생각하면 두렵고 떨리는 저에게 10절처럼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길 원해요.
앞으로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지켜주심을 믿고 어머니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적용할게요.
저의 적용은
아픈 어머니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며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겠습니다.
힘든 일이 생겨도 학생의 때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회피하지 않고 교회 소그룹에 나누겠습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 밤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 앞에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나 찬양합니다. 그런데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 하면서도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만 평화로다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땅에 있다고 다 주어지는 평화가 아니죠. 하나님, 우리의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사람,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없어요.
같은 사건 같은 소식이라도 믿는 사람에겐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들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겐 그저 안 좋은 사건, 위기의 소식으로만 들릴 수 있다는 거죠. 나에게 찾아온 두렵고 무서운 사건에서 올바른 견해를 갖지 않으면 평화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바른 견해가 무엇인가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나의 주제를 아는 것이죠. 내가 하나님을 떠나면 불행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알아야 해요.
이런 내 주제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내 삶에 모실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신 큰 기쁨의 소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평화를 누리며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드립니다. 주님
듣고 또 들어도 기쁜 소식,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기쁜 소식을 내 가족과 이웃에게 힘든 사람과 아픈 사람들에게 잘 전해야 하는데, 예수님의 탄생은 성령의 잉태처럼 이렇게 무서운 사건으로 오기에 여전히 두렵습니다.
또 그렇게 두렵다 보니 구원에 대한 애통함도 사라지고 시들해지고 사랑도 없어져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내 사건이 너무나 커서 다른 사람을 공감하지 못하고 그저 나에게만 꽂혀서 인정받으려는 욕구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게 해 주셨으니,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사랑하는 저희가 되도록 은혜의 은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표적이 되어 주시옵소서 그 길을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일예배_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새벽큐티_손동선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vKjngs4yrXE?si=_sPvPd4c7DYdjEbm
0116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거절의 기술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