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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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이 옳으냐<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5.01.30 본문 : 누가복음 6:1-11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누가복음 6장 1절에서 11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느 것이 옳은지 깨닫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 깨달으려면 

첫째_주인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분명 옳고 그른 일이 있어요. 사람들은 도덕과 법으로 그것을 분별하지요.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에게 규례와 명령,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후 하나님의 구속사를 보면 참 우리 인생에 옳고 그른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오늘 1절에도 보니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라고 해요. 제자들이 왜 이삭을 먹었죠? 병행 본문인 마태복음에 보면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었다고 해요. 

그러니 2절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며 제자들을 비방합니다. 당시 유대 전통으로는 안식일에 이삭을 자르거나 손으로 비비는 일을 해서는 안 되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트집을 잡으려고 뒤를 캐고 다니던 바리새인들인데, 그러니 옳다구나 딱 걸렸어 했겠죠.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전통이라서가 아니고 육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신명기 5장 15절을 보면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내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내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고 하셨어요. 

애굽의 종 되었던, 다시 말해 세상에 종 되었던 나를 구원하신 은혜,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 안식의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적용하면서 목숨을 걸고 율법을 지킵니다. 목적이 오로지 복받는 것에만 있기에 율법을 안 지키면 불안하고 열심히 지키면서 남을 정죄하는 거예요. 

오늘 3절부터 주님은 왜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하다가 진설병을 먹은 일화를 말씀하셨을까요?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맹목적인 준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임을 알려주시려는 거예요. 진정한 옳음은 다른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일이에요. 

내 기준이 아니라 나를 부르신 주님이 무엇을 옳다 하시는지 끊임없이 think 하는 것이죠. 안식일임에도 이삭을 잘라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배고픔까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 진정한 안식일을 잘 지키는 비결이에요. 

적용질문

-내가 끝까지 옳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이에요?

-나의 원함과 주님의 원함이 일치하나요? 

-나의 옳음으로 상대를 죽이고 있지는 않나요? 

어느 것이 옳은지 깨달으려면 

둘째_생명을 구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제 더 나아가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계략을 짭니다. 6절 7절을 보니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실새. 거기에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라고 해요. 

오른손 마른 자는 어떤 사람이죠? 외경에 따르면 이 손 마른 자는 석공일을 하다가 손이 흉측하게 오그라들어 생계에 지장을 받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한마디로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영혼이죠.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런 손 마른 자를 자신들이 구해야 할 영혼이 아닌 이용할 도구로만 생각합니다. 

그의 아픔에는 관심도 없고, 병 고치기만 해봐라 하면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 올무를 놓을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어요.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그들의 생각까지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라고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세요? 율법을 문자적으로 도덕과 윤리적인 잣대로 생각하면 안식일에는 뭘 해서도 안 되겠죠. 그러나 안식일이라고 해서 영혼을 살리는 일, 선한 일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구제와 봉사를 열심히 해도 그것이 영혼 구원과 상관없이 오직 내 자랑, 내 의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또 악을 행하는 것과 다름없지요.

예수님을 죽인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랬어요. 그들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의만 쌓느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안식을 누리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도 살리지 못합니다. 결국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로 다른 사람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남이 아닌 나를 못 박아 내 자아를 죽이는 길이에요. 

적용질문

-요즘 내가 고발하려고 엿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교회에서 봉사를 하면서도 영혼 구원과 상관없이 오직 내 자랑, 내 의를 위해 열심을 내지는 않습니까? 

《공동체 고백》 

수치와 배신의 사건이 말씀으로 해석되어 판단과 정죄의 죄를 고백하고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는 한 청년의 청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형과 함께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20살 정도의 형에게 끌려가 맞고 강제추행을 당했어요. 너무나 두렵고 충격적이었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죠. 

사춘기를 겪으면서 분노와 수치심, 우울감에 스스로 나는 더러운 존재야라고 여기며 죽음을 생각했고, 누군가 이 일을 알게 될까 노심초사하며 완벽주의 성향과 강박증도 생겼어요. 겉으로는 바리새인처럼 외식하고 포장했지만 억울함과 피해 의식으로 자존감은 낮아서 시기와 질투가 많았지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여자친구를 전도했는데, 여자친구가 제가 가장 믿고 좋아하던 교회 형과 만나는 배신의 일을 겪었어요. 교회에서 그들을 볼 때마다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 괴로웠죠. 

그러던 중 어머니를 통해 지금의 교회로 인도되어 누구에게도 얘기하기 싫었던 어린 시절, 수치와 배신의 사건들을 소그룹에서 나누었어요. 같이 아파하며 위로해 주는 지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저에게 위로와 안식이 되었지요. 

날마다 말씀을 듣다 보니 오늘 6절처럼 주님이 고쳐주셔야 할 오른손 마른 자가 바로 저라는 것도 깨달았어요. 사람들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며 정죄하고 고발하려던 저의 죄를 고백하니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고, 주님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안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저의 악한 마음을 고치심으로 참된 안식을 주신 주님을 찬양해요. 

저의 적용은 

저의 마른 손을 고백하며 소그룹 지체들에게 심방 전화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제 간증이 담긴 청년 큐티인을 주며 전도하겠습니다. 

큐티인에서는 올해 1월부터 청년 큐티인 0q가 나왔습니다. 많은 청년들은 관심을 가지고 큐티해 보기를 권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오른손 마른 자가 회복되는 이 감격적인 순간에 11절을 보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의논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도들이 병자들을 고치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잡아넣었다고 하죠. 

다들 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다 그렇지 않나요? 교회 다녀도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하기는 3배가 어렵고,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하기에는 7배가 어렵다고 하죠. 지체에게 슬픈 일 생기면 나는 아니라 다행이고 기쁜 일이 생기면 배가 아프고 시기질투가 올라와 감사는 싹 사라집니다. 그러니 우리라고 뭐가 다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 옳은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생명 살리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내려놓고 진정 옳은 일, 곧 구원의 일을 선택함으로 생명을 살리는 하루를 보내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드릴게요. 주님 

날마다 말씀으로 위로받고 평안을 누림에도 늘 시장한 것이 많은 저희예요. 돈에 고프고 학벌에 고프고 정욕에 고픕니다. 

새벽 기도 안 가면 사업이 안 풀릴 것 같고, 주일 예배 안 드리면 내 아이가 잘못될 것만 같고, 그래서 늘 안식을 누리지 못하여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오른손이 마릅니다. 

날마다 이렇게 큐티를 해도 내 죄는 잘 안 보이고 옳고 그름으로 따지며 남을 정죄해 댑니다. 그러다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의논하는 바리새인이 바로 저희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옳고 그름을 내려놓고 이제는 영혼 구원때매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것이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임을 늘 기억하며 날마다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하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주일예배_돌이켜 떠나라

새벽큐티_김현중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tBVEat6rxaQ?si=B8Aj-ZEgQfoycFPQ

0130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구원을 위한 배려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 

#121 악을 덮는 등불

💞모든 사람을 낫게 하는 능력<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5.01.31 본문 : 누가복음 6:12-19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누가복음 6장 12절에서 19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병든 제 몸과 마음이 예수님을 만나 낫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모든 사람을 낫게 하는 능력은 

첫째_기도로부터 나옵니다. 

오늘 12절을 보니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오라고 해요. 이때는 어떤 때이죠? 어제 예수께서 손 마른 자를 고치며 안식일의 참 의미를 가르치시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노기가 가득해서 예수님을 죽일 의논을 했다고 했잖아요. 

이때는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동시에 예수님을 향한 유대 지도자들의 적대감도 커져가던 때를 말해요. 주님이 이런 위기에서도 인간의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지요. 특별히 주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기에 앞서 아버지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십니다. 

어떻게 기도하셨다고 하죠? 밤이 새도록 하셨다고 해요. 이 밤이 새도록이라는 표현은 오직 누가 복음에만 나오는데, 이는 환자를 간호할 때 쓰는 의학 용어에서 비롯된 말이에요. 잠도 자지 않고 병자를 열심히 돌보듯 온마음 다해 간절히 기도하시다가 새벽을 맞았다는 뜻이지요. 

이적을 베푸실 때나 죽은 자를 살리실 때도 특별 기도를 하지 않으셨던 주님이신데 제자를 뽑으실 때는 이렇게 특별 철야 기도를 하십니다. 왜일까요? 모든 사역의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삶을 영유하는 모든 일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실패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만큼 사람이 중요해요. 

사역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에 그 한 사람, 그 한 제자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교회 사역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울 때 얼마나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지 몰라요. 말씀대로 세워지기를 기도하면서 주님의 지혜와 인도를 구하고 또 구하죠. 

정말 기도 없이는 안 되는 일입니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는데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무조건 밤이 새도록 기도만 해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묵상한 그 말씀을 내 입술로 고백하며 기도할 때 생각과 마음이 말씀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지요. 그 가운데 허락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삶을 살아내는 것까지가 기도입니다. 

적용 질문

-나의 기도 시간은 언제인가요? 또 어떤 기도를 하나요? 내 기도 속에 말씀이 있나요? 

-나라와 가정, 교회에 믿음의 한 사람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세요? 

모든 사람을 낫게 하는 능력은 

둘째_제자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신 주님은 날이 밝자 제자 중 열 둘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우신 사도들의 면모가 어떻습니까? 대단한 학벌도 배경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자들이죠.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 빌립은 어부 출신이고, 나다나엘의 다른 이름인 바돌로매는 심지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나 날 수 있느냐고 예수님을 무시했던 사람이에요. 마태는 로마 권력에 붙어 서민들의 세금을 받아먹던 매국노요.도마도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의 못자국을 확인하고서야 부활을 믿은 의심받는 사람이에요. 

작은 야고보라 불리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그 행적이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는 또 어떻습니까? 로마 통치에 극단적으로 반발했던 반 로마주의자였습니다. 이렇게 평범하다 못해 죄 가운데 있던 비천한 자들이지만 주님은 이들을 제자 삼으시고 직접 양육하시며 복음의 일꾼으로 세우십니다. 

그런데 사도의 명단 마지막에 누가 있습니까? 예수를 파는 자 될 갸롯 유다입니다. 끝내는 배반할 자라는 걸 아시면서도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그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여러분이라면 내 뒤통수 칠 자라는 걸 뻔히 알면서 그를 내 식구, 내 부하직원으로 드릴 수 있으시겠어요? 

제자는커녕 당장에 내쫓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릅니다. 그러니 제자를 세우기 위해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주님의 그 마음이 정말 공감되지 않으세요? 제자의 자격은 오직 자기 죄를 보는 것이에요. 비록 연약해도 주님의 부르심을 알고 내 죄를 보며 순종하는 자는 능히 사명을 감당합니다. 

산에서 기도하시고 열두 사도를 부르신 주님은 이제 그들과 함께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죠?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이라고 해요. 

예수가 권위 있는 말씀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낸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사람들이에요. 물론 소문을 듣고도 간절함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았겠지요. 주님은 이렇듯 슬픔 가운데 나오는 자들을 결코 내버리지 않으십니다.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받는 자들을 고쳐주시고, 주님을 만지려 힘쓰는 모든 이에게 능력을 행하여 치유해 주십니다. 이렇듯 축복은 완전한 자가 아니라 자기의 부족함을 더 많이 깨닫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나는 어떤 병에도 안 걸렸다, 나는 완전하다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과 같지요. 

우리 중 누구도 죄와 중독에서 자유할 자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적용질문

-주의 부르심 앞에 나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자격이 없다며 따르기를 멈추지는 않나요?

-연약하기에 나를 부르셨음이 인정되나요? 

《공동체 고백》 

사업 실패로 가족을 힘들게 하신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지만, 그런 아버지가 가족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신 공로자임을 인정하며 원망을 그치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제가 어릴 때 아버지는 사업한다며 집을 나가신 뒤로 생활비도 주지 않고 한동안 연락도 안 되어 어머니 홀로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어요. 어머니는 삶이 힘들어 저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셨고, 가끔 집에 오시는 아버지도 교회로 인도하셨어요. 

하지만 아버지를 향한 저의 원망은 사라지지 않았죠.아무리 아버지를 용서하려고 노력해 봐도 저는 아버지가 여전히 불편했어요. 사업이 망한 뒤 집에 돌아와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이기적으로 행동하시는 아버지를 보는 게 너무 힘들었죠

.

그러던 중 저는 믿음의 공동체에 속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동안 착하게만 살았다고 생각하던 제가 곧 예수님을 죽인 바리새인 같은 죄인임이 깨달아졌어요.또 예수 믿게 해준 부모가 최고의 부모이며, 우리 가족이 구원받도록 아버지가 수고하셨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눈 녹듯 사라졌어요. 지난 명절에 그때 사업이 성공했다면 우리 가족이 편하게 살았을 거다라는 아버지 말씀에 저는 웃으면서 만약 그랬다면 우리 가족은 예수님 믿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스스로 의롭게 여기며 아버지를 원망하다 죽을 뻔한 저를 고쳐주시고, 아버지의 수고를 깨닫게 하신 주께 감사드리며, 13절에서 12 제자를 부르시듯 저를 불러주신 사명의 자리에서 지체들을 잘 섬기겠습니다. 

저의 적용은 

아버지께 전화해서 예수 믿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힘들어하는 교회 소그룹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화로 격려하겠습니다. 

평범하고 죄 많은 자들을 열두 사도로 부르셨듯이 주님은 자격 없는 우리도 택하시고 부르셔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제자의 자격은 오직 자기 죄, 자기의 부족을 보는 것이에요. 

나의 부족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주님 앞에 나오는 자에게 주님은 능력을 베푸시고 그로 구원의 일꾼 되는 큰 사명을 맡기십니다. 오늘도 한결같은 사모함으로 주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드릴게요. 주님 

대단한 학벌도 배경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저희를 제자로 불러 말씀으로 양육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평범하다 못해 죄 가운데 있던 비천한 저희를 제자 삼기 위해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는데, 저희는 이런 특별한 은혜를 받고도 여전히 환경만 나아지고 병 낫기만을 바랍니다. 

날마다 큐티하며 무엇보다 내 죄가 보이고 내 부족함을 알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가 바로 귀신 들린 자임을,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병자임을 알기 원합니다.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 저희를 낳게 해 주시옵소서 그 능력의 주님을 따르며 제자로 살아가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주일예배_돌이켜 떠나라

새벽큐티_김태현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2X_0yrU1Dzc?si=1BeyiQkdW8JtJWw4

0131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구원을 위한 배려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 

#121 악을 덮는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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