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싸우고자 하느냐<큐티노트_김양재목사>
날짜 : 25.07.28 본문 : 사사기 12:1-15
1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2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 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4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5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7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8 그 뒤를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9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10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11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12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13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14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15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사사기 12장 1절에서 15절까지예요.
하나님 아버지, 시작하려 한 싸움을 멈추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싸움은 첫째_명예 욕과 우월감으로 시작됩니다.
입다가 암몬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딸을 번제물로 희생시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스라엘의 새로운 위기가 다시 찾아왔어요. 입다가 암몬 사람들과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퍼지자 1절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요단강을 건너와서 트집을 잡으며 입다를 협박합니다.
전쟁에 자신들을 왜 안 불렀냐는 것이에요. 그들은 이전에도 기드온에게 같은 이유로 강력히 항의했었죠. 그때는 기드온이 그들을 추켜세워서 다툼을 면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똑같이 트집을 잡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너무 터무니없는 것이 암몬 사람들이 에브라임도 동일하게 18년 동안이나 괴롭혔잖아요.
그때는 싸우지도 못하고 잠잠했으면서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요? 더 나아가 우리가 반드시 너와 내 집을 불사르리라고 협박까지 합니다. 바로 얼마 전에 입다의 딸이 불살라 번제로 드려졌는데 이런 말을 하며 입다의 깊은 아픔을 자극하는 거예요.
에브라임이 기드온 때도 그러했고, 입다 때도 똑같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명예욕과 우월감 때문이에요. 요셉의 후손인 에브라임이 항상 기득권층이어야 하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죠.
에브라임의 뜻은 창성함, 풍요로움 두 배나 주셨다는 거예요. 늘 자신들이 차지하고 누리고 받는 것에 익숙해진 지파입니다. 요셉처럼 색동옷도 입어야 하고 늘 머리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마음은 주변 사람들과 다툼을 일으키기 십상입니다.
에브라임만 그렇나요? 우리도 그렇죠. 내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겠지라고 생각하기보다 반드시 받아내야지 하며 싸움을 준비하지요. 태어날 때부터 경쟁하려 하고 이기려 하는 게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옆 사람보다 내가 더 복을 많이 받아야 한다며 싸울 준비를 해요.
이에 입다는 3절에서 너희가 도와주지 않아서 목숨을 걸고 싸워 승리했는데 왜 이제 와서 이러느냐 하며 반문합니다. 그리고는 4절에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라고 해요. 명예욕과 우월감은 나 자신이 어떠한 처지인지를 깨닫지 못하도록 눈을 가립니다.
그렇게 나를 아는 것이 지혜예요. 정확한 자기 인식이 있어야 다툼을 그칠 수가 있는 것이죠. 내가 어떤 죄인이었고 어떤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지를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감사로 다가오며 다툼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적용질문
-늘 비교하며 우울감 또는 열등감에 사로잡히나요 가지지 못해서 부글부글한 것은 무엇인가요?
-내 것이라 생각하며 가지기 위해 싸움을 준비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싸움은 둘째_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재차 공치사하며 이스라엘 연합 체제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입다를 자극했어요. 하지만 이 일은 가뜩이나 딸을 떠나보내고서 새끼 잃은 곰처럼 괴로워하며 공허해하던 입다에게 딸을 잃은 울분을 풀 기회를 제공한 셈이 되었어요.
에브라임은 평소에도 4절에서처럼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다 하며 길르앗을 무시하고 비아냥거렸기에 입다와 길르앗 사람이 함께 일어나 에브라임을 공격한 것이죠. 이 전쟁은 결국 입다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5절에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데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며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이라고 해요.
전쟁에서 이긴 길르앗 사람들이 나루턱을 장악하고는 강을 건너려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골라내는데 이 방법이 독특합니다. 6절에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4만 2천 명이었더라고 해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나라 경상도 사람들이 대체로 쌀이라는 발음을 잘하지 못해서 살이라고 하잖아요. 물론 요즘엔 다들 잘하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특히 그 발음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 쌀 발음해봐 하는데 쌀이 아니라 살이라고 하면 이 사람은 에브라임 사람이네 하면서 죽인 거예요.
이렇게 죽은 사람이 자그마치 4만 2천 명이에요.
그럼 이렇게 에브라임 사람들을 죽인 장본인 입다는 어떠했나요? 바로 이어서 7절에 입다가 죽으매로 끝이 납니다.
전쟁이 끝난 후 6년 동안 사사로 있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세워진 사사 중 가장 짧은 임기예요. 그리고 입다의 통치 기간을 말하며 평안하였더라는 말은 없고 그저 죽어서 장사되었다는 말만 기록됩니다.
우리 삶에도 수많은 싸움이 계속되지요. 그런데 우리는 남을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이 싸움과 전쟁 속에 다름 아닌 내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싸움이 없이 평안하게 해달라는 게 답이 아니에요. 싸움은 반드시 누군가가 죽어야 끝이 납니다. 이 싸움 속에서 내 자아가 하나님을 대신하던 내 욕심과 죄악이 죽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죽으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의 삶이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상대를 죽이려는 싸움을 위해서 지혜를 짜내고 있나요? 아니면 십자가의 지혜로 내가 죽어지고 있나요?
-싸움을 끝내고자 내가 죽어져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공동체 고백》
위기의 때에 주님께 묻지 않고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남편의 구원을 가로막은 죄를 회개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에브라임 사람들을 무참히 살육하는 입다를 보면 쌈닭 같은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어 수년 전 남편의 사업 문제로 검찰에서 저희 집을 압수수색한 적이 있어요.
저는 남편이 불리한 말을 할까 봐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까진 심문받지 않겠다고 나섰어요. 유명 변호사를 선임해서 놀란 남편 대신 제가 상황을 진두지휘했지요. 그때 저는 하나님이 왜 이 사건을 허락하셨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이 상황을 빨리 모면하고자 돈과 인맥을 의지했어요.
5절과 6절 말씀처럼 하나님께 묻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저의 죄성 때문이었어요. 그때 남편은 교회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여 사건이 해결되면 공동체에 잘 속해 가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사건이 일찌감치 무혐의로 종결되자 남편은 양육 훈련을 받으라는 공동체의 권면을 거절했어요.
그제야 저는 하나님이 남편의 구원을 위해 허락하신 사건에 제가 나서서 해방 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남편은 또다시 사업에 큰 위기가 찾아오자 5년 만에 양육을 받았어요.
하나님은 주일 설교와 큐티 말씀, 소그룹 모임을 통해 기이한 방식으로 사건을 풀어가셨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하나님이 도우신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지요. 남편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묻지 않은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저의 적용은
윗집의 누수 문제를 내 생각대로 처리하지 않고 공동체에 묶어 나누겠습니다.
남편을 무시하며 판단한 죄를 회개하고 남편에게 사과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입다와 길르앗 자손을 통해 에브라임 지파 4만 2천 명을 치신 것은 다시는 이런 통치권을 가져오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힘이 있으면 싸우려 하고 거기서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겸손한 환경을 허락하십니다. 싸움 가운데서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깨달아 싸움의 끝에 내가 죽음으로써 십자가를 붙드는 오늘 하루를 보내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드립니다. 주님
늘 일류가 되어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 싸움을 걸고 빼앗으려고 한 에브라임 지파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으로 영혼 구원에 힘쓰기보다 그저 높아지려고만 하는 저희예요. 자신들의 숫자와 번영을 자랑하며 싸움을 일으킨 에브라임이 그 자랑하던 숫자가 사라지는 싸움의 이 마지막을 보며 다시금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자랑하는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배설물로 여기며 지금 나에게 있는 수많은 다툼과 분쟁 속에서 내 자아가 죽어지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나의 몫을 챙기려는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을 누리는 인생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주일예배돌이키지 못할 일손윤상 목사
새벽큐티_김석규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ra0sMPqKh_8?si=QKp-lLety9iXokgY
0728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고양이 걷어차지 마세요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