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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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굳건해지는 믿음<큐티노트_김양재 목사>
날짜: 25.10.16 본문: 사도행전15:36-16:5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사도행전 15장 36절에서 16장 5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에서도 성령의 견고함을 통해 굳건한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살려면
첫째_형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15장 36절 말씀이 며칠 후에라고 시작되는데 언제를 말하는 것이죠? 지난 32절에서 유다와 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35절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했다고 하였지요.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바울이 바나바에게 1차 선교 여행 때 복음을 전했던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고 제안합니다.

바울은 이제 선교도 성공했고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인정도 받으니 편히 살 법도 한데, 고 사이에 전도했던 형제들의 근황이 궁금해진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항상 이렇게 형제들의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전도하고 봉사를 해도 그래요. 구원을 목적에 둔 형제 의식 형제 사랑이 없으면 결국 내 의 내 자랑만 될 뿐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구역 예배 때마다 시루떡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고는 그것을 구역 식구들에게 또 남김없이 싸주셨어요.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니 사람들은 그야말로 이게 웬 떡이야 했지요. 또 남의 집에 가서 빨래를 해 주시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맨날 떡 나눠주고 빨래 해주고 변소 청소나 하는 엄마가 늘 무시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형제 의식이요. 구원 때문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던 거예요. 그러나 형제를 위해 이렇게 수고하다 보면 그 인생이 견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는 비록 저를 못 보고 가셨지만 딸인 저를 통해 이렇게 견고한 교회를 세워주셨잖아요.손톱만 한 것도 다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적용질문
-언제 형제들이 생각납니까?
-평안할 때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다가 어려운 때가 되면 전자동으로 생각나지는 않습니까?

굳건한 믿음으로 살려면
둘째_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37절에 보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마가가 누구죠? 지난 13장에서도 보았지만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 출신이죠. 예수님도 보고, 바울도 보고, 영적 육적으로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선교 여행을 따라 나섰다가 토로스 산맥을 앞에 두고 나 힘들어 더 이상 못해 나는 돌아갈 거야 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버렸죠. 그런 마가를 다 지켜본 바울입니다. 그러니 38절에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고 딱 거절해요.

성경 원어를 보면 37절에서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가고자 했다는 것은 부정사 부정, 과거형입니다. 지난 일이니 오직 조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38절에서 바울이 데리고 가는 이란 표현을 쓴 것은 부정사 현재형입니다. 사명을 위한 지속적 행위로 여기며 끝까지 같이 다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죠.

바나바는 감성으로, 바울은 이성으로, 바나바는 정으로, 바울은 구원의 시각으로 접근하니까 의견 차이가 좁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39절에 드디어 서로 심히 다투고 피차 갈라섭니다.

인본적으로 보면 형제끼리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그러나 구속사적으로는 이방 선교를 이어가야 하는 바울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건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는 안 다녀도 돈 많이 버는 남편이 최고고 공부 잘하는 자식이 최고입니다. 그런 배우자 자식을 못 내려놓지요. 바울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40절과 41절에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의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고 해요.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선 후에 교회들이 견고하게 되었다는 것이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는데 그런 것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견고함입니다. 이 다툼이 견고함이 되어서 세계적인 선교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적용질문
-바나바처럼 내가 인본적으로 챙기고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기준은 감정입니까? 이성입니까? 정의입니까? 구원입니까?
-의지하던 사람과 심하게 다투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이 나를 견고하게 한 일은 무엇입니까?

《공동체 고백_청소년 큐티인》

아는 형을 전도하다 다투게 된 사건에서 복음과는 상관없이 내 주장을 내세우고 고집 부린 죄를 회개했다는 한 고등학생의 청소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최근 저는 아는 대학생 형을 교회로 전도했어요. 형은 삶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고 했고, 전도 경험이 많지 않은 저는 형을 무조건 교회로 데려와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형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기대했지요. 이후 형은 저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형이 나 내일은 교회 안 가고 쉬고 싶어라고 제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자 저는 마음이 복잡해졌어요. 결국 형에게 힘들면 집에서 쉴 게 아니라 교회를 와야지라고 답장하며 마치 형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처럼 정죄했어요. 형은 짜증을 내며 그만하라고 했지만 제가 멈추지 않고 몰아붙이는 바람에 결국 형은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답장을 멈추었어요.

다음 날 형은 제게 ‘내가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었어.네 말을 무시해서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해 주었어요. 그 말을 들은 저는 하나님과 형 앞에서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15장 39절 말씀에 바나바와 바울은 마가를 선교 여행에 데려가는 문제로 서로 심히 다투어 갈라서요.

그러나 저는 바울과 다르게 복음과는 상관없는 제 고집으로 형을 판단하고 정죄했어요. 형보다 신앙이 더 좋다고 생각하며 형을 존중하지 않은 제 모습을 회개해요 이제는 스스로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교만을 버릴게요.

저의 적용은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겠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교회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16장 1절에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라고 해요.
루스드라가 어떤 곳입니까? 지난 14장에서 바울은 그곳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걷게 하는 기적을 보였잖아요. 한편으로는 사람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곳이기도 했어요. 영광과 비난을 동시에 경험한 곳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사명이라도 그렇죠. 험한 산맥도 2개나 넘어야 하는데 거길 또 가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형제 의식으로 갔습니다. 디모데야말로 이 모든 것을 넘어선 끝에 얻은 열매입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바울의 동역자로 따라 나서며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죠? 3절에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할례를 행했다고 해요. 아니 이방인은 이제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 하고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 바울은 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을까요?

디모데의 아버지가 헬라인이고 엄마가 유대인이에요. 유대인들이 제일 무시하는 혼혈인 것이죠. 더구나 할례를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시험에 들까 봐 본질인 복음 사역을 위해 비본질적인 할례를 양보한 것입니다.

5절에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고 해요. 가만히 앉아서 교회가 굳건해지는 게 아닙니다. 말씀을 한 절 한 절 날마다 적용하며 내 살을 떼고 할례를 행하니까 믿음이 굳건해지는 것입니다.

본질인 복음을 위해 구원을 위해 비본질인 내 인격과 체면 소유 입장을 양보하니 집안이 살아나고 공동체가 굳건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또 날마다 수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기도드립니다. 주님

사도행전 이후 2천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교회를 이토록 견고하게 세워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형제 의식을 가지고 또 세상을 의지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교회들이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디모데 같은 동역자도 붙여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의 자녀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우리 부모들이 성령의 동역자가 되고 수행원이 되어서 이 아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길 원합니다.

본질인 복음을 위해 구원을 위해 비본질인 부모의 체면을 내려놓고 이 아이들을 잘 섬기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오늘도 세계 각지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을 기억하여 주셔서 어떠한 환경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맡겨진 구원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의 견고함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주일예배_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김성우 목사>

새벽큐티_이성은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bl3tzXkb4-Y?si=-c9sww03URttyT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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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간구하매 들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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