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멸망시키리라<큐티노트_김양재 목사>
날짜: 25.12.16 본문: 예레미야 49:23-39
23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24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켜잡고 해산하는 여인 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았도다
25 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
26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그 날에 그의 장정들은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
27 내가 다메섹의 성벽에 불을 지르리니 벤하닷의 궁전이 불타리라
28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격을 받은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29 너희는 그들의 장막과 양 떼를 빼앗으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낙타를 빼앗아다가 소유로 삼고 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할지니라
3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세웠음이라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32 그들의 낙타들은 노략물이 되겠고 그들의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 것이라 내가 그 살쩍을 깎는 자들을 사면에 흩고 그 재난을 여러 곳에서 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하솔은 큰 뱀의 거처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거기 사는 사람이나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리라 하시니라
34 유다 왕 시드기야가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5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요
36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하여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리니 엘람에서 쫓겨난 자가 가지 않는 나라가 없으리라
3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엘람으로 그의 원수의 앞,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의 앞에서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재앙 곧 나의 진노를 그들 위에 내릴 것이며 내가 또 그 뒤로 칼을 보내어 그들을 멸망시키리라
38 내가 나의 보좌를 엘람에 주고 왕과 고관들을 그 곳에서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 그러나 말일에 이르러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예레미야 49장 23절에서 39절까지예요.
하나님 아버지, 멸망의 사건 가운데서도 회복의 길로 가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멸망의 이유는
첫째_교만으로 거짓 평안을 쫓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메섹 게달과 하솔, 엘람을 향한 예언이에요. 23절에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라고 해요.
다메섹은 한때 요단 동편에 이스라엘 민족을 잔인하게 학살한 아람의 중심 도시이자 수도입니다. 하맛 아르밧은 다메섹 북쪽의 성읍이지요. 다메섹은 BC 732년 앗수르에 멸망당한 이후 독립합니다. 하지만 BC 605년에 갈그미스 전투 이후로 바벨론의 영향 아래 들어가지요.
그런데 이들이 심판과 멸망의 불길한 소식을 듣고는 낙담에 빠져요. 이렇듯 예수님 없이 사는 인생은 다메섹처럼 늘 불안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견고해 보여도 그 내면은 항상 요동칩니다.
24절에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켜 잡고 해산하는 여인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았도다라고 해요. 소문만으로 피곤해지고 떨림을 경험합니다. 말씀으로 예비되지 않은 사람은 작은 사건에도 일희일비하며 마음이 요동합니다. 두려워하면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며 낙담하지요.
25절을 보면 다메섹은 한때 찬송의 성읍, 하나님의 즐거운 성읍이었으나 결국 버린 성읍이 되고 말아요.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영광을 누렸지만 교만과 우상숭배로 심판을 초래한 거예요. 이에 장정들은 거리에 엎드러지고 군사들은 멸절됩니다. 다메섹 성벽에 불이 붙고, 벤하닷의 궁전은 불에 타지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으면 사건마다 두렵고 놀라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평안이 없습니다.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내 마음이 한순간에 불타는 성읍처럼 되고 맙니다. 오직 말씀만이 이 땅의 흉한 소문 앞에서도 나를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주고 평안을 줍니다.
적용질문
-나는 어디에서 또는 무엇에서 평안을 얻나요?
-내가 자꾸만 두려워하고 마음이 요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멸망의 이유는
둘째_내 만족만을 추구하는 나 홀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아라비아 광야에 유목민 개달과 하솔을 향한 말씀이 선포됩니다. 28절에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고 해요. 게달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의 후손들로 팔레스타인 동쪽 사막 지역에 거주했어요. 이들은 활쏘기를 잘해서 때때로 다른 지역을 공격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이들을 멸하라고 명하셨어요.
29절을 보면 느부갓네살에게 게달의 장막과 양 떼에 휘장과 모든 기구를 빼앗고 그들에게 사방의 두려움이 있다라고 외칠 것을 명하십니다. 게달 유목민들의 낙타는 부와 걷치레 우상을 상징해요.
우리도 때때로 걷치레를 못해서 힘들어 하곤 하죠. 이렇게 외형적인 것,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우리입니다. 그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고 전전긍긍해요. 학벌, 돈, 지위, 외모 등 나를 포장하는 걷치레가 우상이 될 때 하나님은 바벨론 같은 사람과 환경을 통해 그것을 깨뜨리십니다.
30절에서 하솔 주민들은 침략이 정해졌으니 멀리 피하라는 말을 듣지만 사실 도망을 해도 소용이 없어요. 이미 심판이 임박했기 때문이에요. 도망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역설인 것이죠. 하솔 주민들은 성문이나 문빗장 없이 홀로 살았어요. 교만하게도 자신들의 안락만을 추구하면서 홀로 거하는 길을 택했어요.
겉으로는 평안한 것처럼 보여도 영적으로 고립되어 낙관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진 거예요.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으면 많은 사람이 함께 거해야 하는데, 우리는 자꾸만 홀로 거하려고 하지요. 하나님이 나와 우리 가족만 잘 살라고 문빗장이 열린 환경을 주신 게 아니에요. 이기적으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허락하신 시간과 재능, 물질을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나누라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의 고된 시집살이로 오히려 문빗장이 닫힌 인생이었지요. 그럼에도 집에서나 남편의 병원에서 수없이 복음을 전하다 보니 홀로 거할 수가 없게 하셨어요. 남편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도 하나님은 저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곧바로 사역의 길로 인도하셨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모략이었습니다.
적용질문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의 시선만 자꾸 의식하지는 않나요?
-내 평안만을 추구하는 나 홀로 신앙으로 고립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공동체 고백》
동생과의 불편한 관계를 통해 내 죄가 보여 이기심의 활이 꺾이고 지금까지 기다려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모태 신앙인이자 3남매 중 장녀인 저는 바로 밑에 연년생 남동생과 불편한 사이예요. 전 남편의 일을 도와주며 힘들어하던 남동생을 돌아보지 못하고 저만 힘들다며 방황하다가 남동생과 멀어졌지요. 그런데도 저는 남동생이 교회를 떠나 사고만 친다며 무시하고 수치스럽게 여겼어요.
그러다 구속사 말씀을 들으면서 동생의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생겨 동생이 힘들어할 때마다 찾아가서 도왔지요. 그런데 연초에 친정 어머니가 항암 치료 통증으로 한숨도 못 주무시는 일이 있었어요. 친정집에 갔다가 남동생을 만났는데 동생은 제 말을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했어요. 그런 동생의 반응에 너만 자식이냐라고 분노했어요.
어머니의 암 사건이 구원의 사건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서도 정작 동생과 관계가 다시 불편해지니 낙심되었죠.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니 여전히 동생을 무시하면서 꿍해 있던 저의 죄가 보였어요. 아픈 어머니보다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저의 이기심 때문에 모두가 수고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죄송하고 미안했지요.
내 생각과 감정만 중요하게 여기던 저를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주님의 사랑에 다시금 감사드려요. 이제는 값없이 받은 그 큰 사랑을 기억하며 39절 말씀처럼 남동생이 피해 의식의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며 저의 죄만 고백하고 가겠습니다.
저의 적용은
남동생에게 무시당해도 요동하지 않고 기도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남동생을 만나면 그동안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라고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엘람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엘람은 강력한 힘과 활, 궁술로 유명했어요. 우리에게 어떤 재능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지요. 그런데 오히려 교만해질 때가 많아요. 그 재능과 실력, 용모를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믿는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치실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우상숭배인 까닭입니다.
37절에서 하나님은 엘람을 원수 앞에서 생명을 찾는 자 앞에서 놀라게 하실 것이라고 하세요. 뒤로 칼을 보내어 진멸하기까지 하신다고 해요. 이 모든 징계의 원인은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이야말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 엘람에 대한 징계는 흩어지는 벌입니다. 가족도, 부부도, 회사, 나라도 모두 흩어지게 하십니다.
우리도 그래요. 자녀의 가출, 부부의 별거와 이혼 같은 불행은 결국 나의 교만과 우상숭배로 인한 징계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심판 속에서도 놀라운 소망이 있어요.
39절에서 뭐라고 하시나요? 그러나 말일에 이르러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고 약속하십니다. 에돔, 다메섹, 게달, 하솔에게는 이런 약속이 없는데, 엘람에게는 이렇게 특별한 은혜를 주시네요.
사랑하는 여러분💕
나와 우리 가정 공동체가 흩어지는 사건을 겪더라도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요. 그 흩어짐 속에서도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예요. 오늘도 이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드립니다. 주님
하나님 없는 이 세상에 평안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메섹처럼 이 땅의 흉한 소문 앞에서 두려워하고 낙담하며 살았습니다.
걷치레에 집착하면서 내게 주신 재능과 은사가 마치 내 소유인 양 교만하다가 흩어지게 된 것은 제 삶의 결론입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 문빗장을 굳게 닫은 차에 자기 중심적으로 행한 저희의 악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내 인생의 문, 가정의 문이 구원을 위해 언제나 열려 있길 원합니다. 겸손한 환경을 통해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십자가 복음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흩어진 식구와 지체들이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가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성읍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일예배_그 날이 이르니리<최대규 목사>
새벽큐티_정근용 목사
https://www.youtube.com/live/nS_kZzNRHYI?si=DLK_7bo5ca8st-
1216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고양이 걷어차지 마세요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 #144 여호와께서 보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