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찬송하리로다<큐티노트_김양재 목사>
날짜 : 24.03.08 본문 : 요한복음 12:9-19
9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12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17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요한복음 12장 9절에서 19절까지예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진정한 호산나의 찬송을 드릴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진정한 찬송은
첫째_죽었다가 살아난 간증이 있을 때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9절에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함이러라고 해요.
예수님과 나사로를 보기 위해 물밀듯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제가 큐티 모임을 할 때도 제 간증과 공동체 고백에 등장했던 사람들을 보려고 오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10절과 11절에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고 해요.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 예수님이 살리신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나사로의 간증과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으로 인해 많은 유대인이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죽을 것 같은 고난에서 말씀으로 살아난 은혜가 있으면 그것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지요.
돌이켜보면 내가 죽을 만큼 힘들었던 것은 고난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말씀이 없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난 말씀으로 나의 이야기를 전하기만 해도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제가 섬기는 우리도 교회는 특별한 전도 프로그램이 없어요. 부흥회도 따로 없었어요. 그저 1년에 세 번 그것도 주일 예배에 부활절, 추수감사절, 창립 예배 이때 전도 축제를 하는 게 다예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죽은 나사로와 같은 자신이 주님의 말씀 때문에 살아났다고 고백하는 성도님들이 많이 계셔서 자신과 비슷한 고난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려고 전도들을 많이 하세요.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는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많이 맺게 해 주셨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며 가다 보면 그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기에 주님이 책임지고 인도해 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간증이 바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진정한 찬송이 아닐까요?
적용질문
-죽었던 내가 말씀으로 인해 살아난 간증이 있습니까?
-그 간증을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곳곳에 잘 전하나요?
-나의 간증을 듣고서 누군가 예수를 믿게 된 전도의 열매가 있습니까?
🥁진정한 찬송은
둘째_날마다 말씀으로 내 믿음을 점검할 때 들을 수 있습니다.
12절 13절에 보니 그 이튿날에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갑니다. 나사로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 많은 유대인이 바로 그 이튿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느니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며 외칩니다.
호산나가 무슨 말이죠? 우리를 구원하소서잖아요. 드디어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무리는 왜 또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고 덧붙였을까요? 이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메시아가 아니라는 거예요.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줄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어떤 모습입니까? 사람들의 기대와는 너무도 달리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백마는 커녕 다 큰 나귀도 아니고 어린 나귀라니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고 하는데, 이게 언제 어디에 기록된 바죠?
스가랴 9장 9절에 시온에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에 따라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내 왕이 내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곳 곧 나귀 새끼니라고 하였죠.
스가랴 선지자가 주전 520년 무렵에 활동한 것을 감안하면 500여 년 전의 예언이 이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17절에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했던 사도 요한은 왜 18절에서도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하며 두 차례나 무리를 강조하고 있을까요?
나중에 이 무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딴 소리하는지 분명히 보라는 거예요. 지금은 비록 호산나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지만 나중에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끌려갔을 때 이들이 뭐라고 외치죠?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잖아요.
이게 딱 일주일 걸리는 거예요. 우리가 다 예외가 없습니다. 오늘 주여 부르짖다가도 내일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큐티하며 날마다 말씀으로 내 신앙을 점검하고 나를 직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에게 주님은 죄에서 구원해 줄 영적인 메시아입니까?
-세상의 압제와 고난에서 구원해 줄 세상적인 메시아입니까?
-주여주여 부르짖다가도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한 적은 없습니까?
«공동체 고백_내가 죽어야 가족이 살아요»
나 때문에 자녀들이 아파하는 것을 보고서야 내가 죽어져야만 가정이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저는 어려서부터 돈을 벌고 싶었어요. 그런 저의 바람대로 남편과 사업장을 공동 운영하며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었지만 오히려 남편과 갈등하며 이혼하게 되었지요.
홀로 아들을 키우다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믿게 된 저는 아내와 사별하고 딸 아이와 살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했어요. 하지만 저는 청소년기를 지나는 자녀들과의 갈등으로 점점 지쳐갔답니다.
그러다 가정을 살아나라 하는 신앙 서적을 읽고 큐티하는 공동체로 인도함을 받았어요. 말씀을 들으며 지금까지 자녀들을 위한다고 했던 제 행동이 오히려 아이들을 힘들고 아프게 했음을 깨닫고 회개했지요.
현재 딸은 집을 떠나 우울한 청년기를 보내고 있고, 아들은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중도 포기하고 편입했지만 휴학한 상태예요. 아들은 저의 작은 말에도 혈기를 내뿜고 강박 증세를 보여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요.
그제야 저는 자녀들이 아픈 것이 주께서 허락하신 일이며 제 삶의 결론이라 인정하게 되었어요.
방에서만 지내는 아들이 무기력하고 답답하게 느껴지곤 해요.
그렇지만 14절 말씀처럼 내가 죽어야만 부활한다는 것을 몸소 보이시고자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처럼 엄마의 자리를 잘 지키고, QT를 통해 내 자아가 주어지는 섬김의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
저의 적용은
아들에게 밥 먹으라고 상냥하게 말하겠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루에 두 번씩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라고 말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호산나 호산나 하다가도 내일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할 수 있는 내 믿음을 스스로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큐티하며 내 죄부터 먼저 보아야 하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죄를 보아야 그럼에도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지고, 한량 없는 주의 은혜를 알아야 말씀을 이루고자 나를 드리는 헌신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내 죄가 보여서 주님의 은혜가 깨달아지므로 말씀을 이루는 헌신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릴게요. 주님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과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를 보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내가 살아나는 것이 있어야 존재 자체로 예수님을 전하는 인생이 되는데, 주님이 나를 살려주심에 감사하다가도 금세 잊고 돌아서는 것은 정말 죽었다가 살아난 일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를 살리신 이유가 나를 살리신 그 예수님을 전하게 하시려는 것임을 깨닫고 우리가 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는데, 날마다 입으로는 호산나호산나하면서도 돈 때문에, 내 유익 때문에, 자식과 성공을 우상 삼고 예수님을 팔며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 날마다 내가 선 줄로 생각하지 않고 말씀의 거울로 나를 비추어 내 믿음을 점검하며 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주일예배아합의 집 길🕌 https://youtu.be/ioVVt3V9o84?si=gRzGNizO1HT6yTI
0308큐티노트🫧
https://youtu.be/9rSrms6nCEA?si=3GtykQT_eYI4QQdQ
김양재 목사의 ost
실패가 실패가 되지 않게 하려면🎀
https://youtu.be/tBv1g1MEgMk?si=bt57utRONBV5cUV4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98 여호와보시기에🌕
https://youtu.be/b7Hv4HTBFmk?si=MRg7NtAV3Wtkcfw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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