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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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무 같은 말<큐티노트_김양재 목사>
날짜 : 24.02.22 본문 : 욥기 18:1-21

1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3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4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5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6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7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8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9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10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
11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12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13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14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15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16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로는 그의 가지가 시들 것이며
17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18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19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20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21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욥기 18장 1절에서 21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올무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첫째_올무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내 몸이 아닌 내 죄를 찢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수아 사람 빌닷과 욥이 2라운드 논쟁을 펼칩니다. 빌닷은 2절과 3절에서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하며 화를 냅니다.

빌닷은 자신과 친구들을 욥이 짐승처럼 여긴다면서 그를 따돌리고 있습니다. 자신과 친구들이 욥에게 한 말은 생각하지도 않고 오히려 욥이 한 말을 트집 잡아 공격합니다.

욥을 짐승으로 여기고 부정하게 본 것은 도리어 자기들인데 욥에게 뒤집어 씌우며 거꾸로 말하고 있네요. 이렇게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해관계에 얽히거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를 마치 짐승처럼 여기면서 부정하게 보기도 합니다.

4절에서 빌닷은 욥 스스로가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고 있다고 말해요. 그는 욥에게 네가 아무리 분노한 들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옮겨지겠느냐며 반문합니다.

내게 닥친 사건으로 분이 나고 격동될 때가 있지요. 그럼에도 내 곁에 있는 상대방이 바위처럼 태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그 모습에 당혹하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격동이 될 때 자기 몸을 찢으며 분노하기보다 바위처럼 변화되지 않는 상대방 때문에 애통해야 합니다.

내가 당한 것만큼 갚아주지 못했다고 부들부들 떨기보다 십자가 앞에서 그 지체의 허물과 나의 죄를 찢으면서 엎드려야만 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듯이, 죄를 찢는 나의 회개를 통해 바위 같은 그 지체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질문
-내가 상대방을 격동하게 한 말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이 내게 한 말 때문에 울분을 터뜨린 적은 언제입니까?
-나는 어떤 말에 자주 분노하고 격동하나요?

둘째_올무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남은 자가 되게 하십니다.

빌닷은 악인에게 임할 심판과 재앙에 대해 일장 연설을 이어갑니다. 5절부터는 악인의 운명에 대해 악인의 빛은 꺼지고 활기찬 걸음은 피곤해지며 자신이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진다고 말합니다.

9절 10절에서는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울무에 얽힐 것이며,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다고 해요. 악인는 자기 꾀로 인해 덫에 걸리고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거예요.

결혼 전에 저는 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해서 학벌을 쌓았습니다. 그 학벌을 가지고 배부르고 등따시게 살고 싶었지요. 그러려니 당연히 돈의 약점이 생기고 자연스레 물질이 우상이 되었어요. 이런 저의 약점 때문에 올무에 걸렸습니다. 제 꾀에 스스로 빠지고 저의 발이 그물에 걸린 것이죠.

결국 저는 장로님 아들이긴 했지만 믿음이 없는 소위 성실한 남편과 결혼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불신 결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당시는 불신 결혼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도리어 저는 교회에서 반주를 하더니 축복받고 시집을 잘 간다. 나도 웃었고, 남도 속는 그런 믿음이었죠. 그것이 저를 올무함정으로 끌고 들어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엔 땅에 숨겨진 덫이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그 덫이 저를 잡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잘 믿고 통찰력이 있었다면 그 덫이 나를 잡으리라는 걸 알았겠지요. 이처럼 우리는 저마다 자기 약점과 열등감에 얽매여 함정에 빠집니다.

이렇게 내가 울무에 걸리고 함정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요? 11절에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라고 합니다.무섭고 창피한 게 많으니 내가 빠진 함정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 또한 결혼 생활에서 남편과 시부모님이 무서워 말조차 제대로 못하다 보니 그야말로 재앙이 따로 없었어요. 돈도 못 받고 제 시간도 없고, 문밖 출입도 자유롭게 못하니 모든 면에서 기근을 경험하게 되었지요.

오늘 이 빌닷이 하는 말이 다 저에게 임했어요. 만일 그때 이 욥기를 읽었더라면 내 이야기가 여기 있구나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무섭고 두려운 영적 기근으로 제 감정은 밤낮 삭막하기만 했습니다.

오늘 이 방송을 들으시는 모든 여러분들은 오늘 이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들으시면 너무 좋겠습니다. 결국 결혼은 제 약점 때문에 제가 선택한 결론이었어요. 누구에게 뭐라고 할 근거가 하나도 없는 거죠?

적용 질문
-내게 스스로 빠져 그물에 걸리고 덫에 치이게 된 일은 무엇입니까?
-내 약점과 열등감 때문에 올무에 걸려 어떤 기분을 겪고 있나요?
-어떤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나를 쫓아옵니까?

«공동체 고백»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영혼 구원의 소명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여러 해 전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지방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어요. 그때는 수임하는 사건 하나하나가 소중했지요. 그래서 재판 전에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고 재판이 종결될 때까지 여러 차례 구치소에 들러 피고인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며 변론을 준비하곤 했답니다.

하지만 서울로 개업지를 옮겨 영장 전담 국선 변호인으로 활동하며 사건의 수임이 늘어나자 피고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수집한 증거 중에서 전과 기록을 먼저 뒤지며 피고인에게 선입견을 품었어요.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들에게 ‘별로 억울한 게 없어 보이네요’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고요.

특히 강력 범죄 피고인에게는 혐오감을 감추지 못해 냉랭하게 대하기도 했어요.이런 저의 모습은 오늘 21절처럼 욥의 불행을 죄의 결과라고 힐난하는 빌닷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지요.

물론 욥과 피고인이 같은 처지라고 할 수는 없지 하지만 저는 정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며 변호인의 본분을 망각한 거예요. 그즈음 저는 교회 소그룹 부리더가 되어 지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았어요. 그 과정에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고 채우라는 마음이 생겨서 정답만 말하는 제 모습을 회개했답니다.

공동체를 통해 소명을 회복시켜주신 주님께 감사드려요. 이제는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 주님이 맡기신 영혼들을 대할 때 치유자로서의 사명을 잊지 않겠습니다.

저의 적용은
국선 사건의 피고인이 자백하는 경우에도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고 상담을 충분히 하겠습니다.
곤고한 상태에 있는 의뢰인들에게 큐티인을 전하겠습니다.

[사실 전도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지만 전도하기가 가장 어려운 자리에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파이팅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17절에서는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라고 해요. 이름을 내기 위해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고 결혼도 하지만 정작 그 이름이 끊어지고 후손도 후회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남은 자가 없다는 것이지요, 인과 응보론에 근거한 빌닷의 훈계에는 남은 자 사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6장 13절에서 주님은 그중에 10분의 1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구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구루터기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밑동 잘린 나무와 같은 우리의 인생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비록 이 땅에서 다 망할지라도 그 구루터기가 남아 있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택자는 고난의 사건 속에서 여러 아픔을 경험하지만 그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범하던 악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 천국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깨닫고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찢음으로 나를 올가매던 올무에서 벗어나 천국을 누리는 하루를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릴게요. 주님

오늘도 정답만 이야기하는 빌닷을 통해서도 악인의 길을 걷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저희는 이해타산을 따지며 지체들을 판단하고 내 몸을 찢으면서 격동하곤 합니다.

구원의 사건이 와도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속에서 내 모습을 애통해하며 내 죄를 찢고 주 앞에 엎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 내 욕심에 사로잡히고 내 꾀에 속아서 내 발이 그물에 빠지고 내 몸이 올무에 걸릴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함정에 빠지니 밤낮으로 무섭고 기근을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 이런 저를 택자로 삼아주시고 밑동 잘린 나무와 같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견인해가시는 은혜에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비록 이 땅에서 망해도 구루터기가 남아 있다고 하시니 남은 자가 되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고난 중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각자의 자기 남은 것을 보게 하여 주시옵시고 그 고통 가운데 사명을 찾게 하시고 올무에 걸리지 않고 가정과 공동체에서 진정한 남은 자로 굳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주일예배_어찌하여 우시나이까💧
https://youtu.be/nrfLMEQfGKA?si=smhN2Ma60qLcewka

0222큐티노트🐯
https://youtu.be/6iuSr-pIykE?si=uuyjuCCU7PhT4KWX

김양재 목사의 ost 이 결혼은 무효야🪻
https://youtu.be/wkcWJ906uIU?si=z3Pr_xxqeCGsfeWE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97 고침 받읍시다🧊
https://youtu.be/d8TXV1dCovw?si=NVEWlVpW3H1Wnq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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