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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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이신 예수님<큐티노트_김양재 목사>
날짜 : 24.03.01 본문 : 요한복응 10:1-21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9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1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요한복음 10장 1절에서 21절까지예요.

하나님 아버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첫째_앞장서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오늘 1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라고 하세요.

앞에 나온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맹인이었던 사람을 주님이 고쳐주셨잖아요. 그러면 같이 기뻐해야 마땅한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 누구냐 며 그를 다그쳤죠. 오히려 맹인이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다 라고 외치며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전하지요.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이야말로 영적으로 진짜 맹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런 영적 맹인이 하는 일이 바로 절도며 강도라고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을 알고도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지 않고 자기에게로 인도하기 때문이죠.

또 2절에서 예수님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고 하십니다. 정정당당하게 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자가 곧 목자입니다. 말씀을 기준 삼고 원칙을 지키면서 늘 나와 남을 돌아보며 주께로 인도하는 것이 곧 목자의 사명이에요.

바리새인들이 열심히 말씀과 원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잖아요. 하나님의 관심은 영혼 구원에 있어요. 그렇기에 그것과 상관없는 원칙과 율법은 그저 나를 위한 것이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바로 절도며 강도인 것입니다.

3절의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해요. 이처럼 우리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부르며 인도하시는 주님입니다. 우리가 양이라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겠죠.

4절과 5절에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고 합니다.

양떼를 먹이려고 길을 나서지만 그 길은 울타리 안에 있을 때와 달리 곳곳에 맹수의 위험이 도사리지요. 또 힘든 골짜기를 통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 인도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면 신선한 풀과 맑은 햇빛, 상쾌한 공기를 누릴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 골짜기를 얼마나 안 가려고 하는지 몰라요. 왜 나를 힘들게 하시냐 고난 좀 그만주시라. 나한테 너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관심 좀 줄여주시라.

꼭 지난달에 묵상했던 욥기가 생각나시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를 그렇게 울타리 밖 세상에 내놓은 분이 주님이시라는 거예요. 내놓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앞서 가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음성을 듣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날마다 큐티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잠시라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면 우리는 금세 목자 잃은 양이 되기 때문이에요.

적용질문
-주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 인도하여 내신 사건은 무엇인가요?
-눈앞에 힘든 골짜기가 두려워 말씀의 인도함 받기를 주저하고 있지는 않으세요?
-날마다 큐티하며 앞서가시는 주님을 잘 따라가시나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둘째_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십니다.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해요.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구원의 문입니다. 다른 문이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십자가는 싫고 영광만 좋아하기에 다른 문을 찾아 기웃거립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문이고 구원받는 것이 최고의 상급임을 알면 인생의 목적을 거룩에 두게 됩니다.그러면 들어가는 사건도 나오는 사건도 우리에게 구원의 꼴을 주시기 위한 구속사의 사건임을 깨닫게 되지요.

이렇게 말씀으로 해석이 되고, 깨달아져야 어떤 사건에도 요동하지 않고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10절부터 12절까지를 보면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오지만,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고자 오셨다고 해요. 그리고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지요.

13절에서는 양들을 버리고 달아나는 자는 양을 사랑하는 목자가 아니라 삯꾼이라고 말해요.14절과 15절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알다로 번역된 헬라어 기노스코는 히브리어 야다처럼 깊은 교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는 것을 의미해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깊이 알듯 목자이신 예수님이 양된 우리를 깊이 알고 사랑하시기에 기꺼이 목숨을 버리겠다고 하시는 것이죠.

17절에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사명에 철저히 순종함으로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어요.

이처럼 우리도 주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를 알면 예수님처럼 순종할 일을 찾아 기꺼이 헌신할 수 있게 됩니다.

적용 질문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문이라고 고백하시나요?
-십자가가 싫어 다른 문을 기웃거리지는 않나요? 나는 목자입니까? 삯꾼입니까?

«공동체 고백_신앙인 독립 선언»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당당히 신앙인이라고 선포하며 자유함을 누린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직장생활이지만 시간에 쫓기며 일하다 보니 함께 커피 한 잔할 동료도 없었어요.

몇 해 전에는 직장에서 리더로 세워졌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만을 바라다 결국 그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야근 중에 힘들어 보이는 한 동료가 눈에 들어왔어요.

동료의 사정을 들어보니 이사 간 집에 문제가 생겼고 업무 스트레스까지 겹쳐 사면 초과인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신앙인임을 밝히며 저도 직장생활이 힘들지만 교회 공동체에 속해가며 힘을 얻고 있어요라고 나누었지요.

그를 위해 기도해주며 신앙생활을 하도록 권면했답니다. 그러자 그 동료도 결혼 전에 뜨겁게 신앙생활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하나님이 돌아오라고 이 일을 주신 것 같다고 고백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은 그 동료에게 말씀이 들리는 은혜와 가족 모두가 주께 돌아오는 기적을 허락하셨지요.

그동안 저는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면 약점이 잡히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를 숨긴 채 오직 인정받고자 노력했지요.

하지만 날 위해 죽어주신 선한 목자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11절 말씀에 직장인으로서의 소명을 깨닫게 되었고, 동역자도 얻는 축복을 받았답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내 삶의 주권은 주께 있습니다라고 선포함으로 자유를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적용은
직장 동료와 정기적으로 만나 큐티한 내용을 나누겠습니다.
직장에서 회식할 때 크리스찬이라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정중히 말하겠습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 간에 다시 논쟁이 벌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는 자도 있고, 반대로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그런데 정작 이 말씀을 듣고도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은 없네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구원의 꼴을 반드시 먹게 될 줄 믿습니다.

다른 꼴을 찾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주님을 따라 정도를 걸어가는 오늘 하루를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선한 목자이신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신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이 됩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듯이 매일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의 갈 길을 인도받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며 풍성한 구원의 꼴을 주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오늘 특별히 3.1절을 맞았어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은 선열들을 본받아 우리에게 맡기신 양들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다른 문을 기웃거리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길로 놓고 걸어가는 사명의 인생을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주일예배_악을 덮는 등불🕯
https://youtu.be/FVaRbkP8yQY?si=bjInpaFCiG8zj7nU

0301큐티노트🍰
https://youtu.be/AsynRqHRxpk?si=N8LpNUtK_3q33CSb

김양재 목사의 ost
실패가 실패가 되지 않게 하려면🎀
https://youtu.be/tBv1g1MEgMk?si=bt57utRONBV5cUV4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97 고침 받읍시다🧊
https://youtu.be/d8TXV1dCovw?si=NVEWlVpW3H1WnqF-

구독과 좋아요는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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