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부인하니 닭이 울더라<큐티노트_김양재 목사>
날짜 : 24.03.26 본문 : 요한복음 18:12-27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 요한복음 18장 12절에서 27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베드로가 나는 아니라 하며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를 수제자 삼으신 주님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첫째_아무것도 기댈 것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 12절에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라고 해요. 무기도 없는 예수님을 잡으려고 군대와 천부장까지 총 동원한 것을 보면 이 일에 로마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음을 잘 알 수 있지요.
세상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을 잡아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메시아를 분별하지 못하니 저마다 권세로 예수님 죽이는 일에 앞장섭니다.
특히나 14절에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라고 해요. 제가 지난 11장을 큐티 할 때도 말씀드렸죠. 하필이면 그 해에 대제사장이 되어서 그 권세로 가야바가 한 짓이 오직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 것입니다.
그런데 15절에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오라고 해요. 이 제자가 누구죠? 바로 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지요.
그렇다면 요한은 대제사장과 어떤 관계가 있었기에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안나스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마가복음 1장 20절에 보면 요한의 아버지 세바덴은 많은 품꾼을 거느린 어부였죠. 예루살렘에도 생선을 많이 공급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제사장 집안과도 친분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여러분 요한은 이 장면을 기록하면서 왜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까요? 겸손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주님과 함께 십자가 지려고 안나스의 집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니잖아요.
단지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라서 들어갔다고 자기 손으로 이렇게 딱 기록했잖아요. 당시만 해도 요한은 자기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창피했던 모양이에요. 믿음이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아요.
반면에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16절에 베드로는 문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라고 해요.
여러분 이 장면이 상상이 되세요? 이러니 요한이 또 얼마나 으스댔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베드로가 요한보다 이렇게 학연 지연이 없어서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기댈 것 없는 것이 그래서 축복입니다.
저도 목회를 시작할 때 그랬어요. 4대째 내려오는 믿는 집안이라도 목사 한 사람도 없었던 처음으로 저와 언니가 목사가 된 그래서 교계에 아는 사람이 없을 수밖에 없었죠. 그러니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게 되었어요.
적용 질문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권세는 무엇입니까?
-돈과 지위, 힘과 능력, 어머니, 아버지, 선생님, 팀장님, 사장님, 시장님, 장관님, 대통령님 이런 권세를 가지고 사람을 살리고 있나요? 죽이고 있나요?
-그 권세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둘째_100% 죄인인 나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17절에 보니 문 지키는 여종이 요한에게는 안 물어보고 베드로에게만 너도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고 묻습니다. 더구나 18절에 그때가 추운 고로 좋은가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고 해요.
불을 쬐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텐데, 불을 쬐는 바람에 그만 얼굴이 드러난 것이지요. 이때 베드로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왜 하필이면 나만 보고 그럴까 괜히 불을 쬐었다가 재수없게 걸렸네 이런 후회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이 사건 또한 우연이 아니죠. 모든 게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베드로의 수준을 예수님이 높게 보신 것이죠.
저도 고등학교 때 언니 원피스를 빌려 입고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요. 딱 앞에서 걸렸어요. 다른 친구들은 몇 번을 그래도 안 걸리는데, 저는 딱 한 번 갔다가 이제 못 들어갔어요. 그러나 이렇게 걸리는 사람이 축복이에요. 바람을 피워도 첫 번째 딱 걸리는 사람이 있지 재수가 더러운 것이 아니고 축복이에요. 일평생 바람을 피워도 안 걸리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25절 이후에 베드로를 보세요. 두 번 세 번 부인해도 사람들이 그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아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때 어떻게 처신하겠습니까? 지금 내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 그럼에도 예수님의 제자라는 게 너무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워서 그래 나다 어쩔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용기가 있으세요? 공짜로 해외 여행을 시켜준다고 하는데, 나는 주일 성수해야 한다. 안 간다 할 수 있습니까? 돈 많고 집안 좋고 착하고 얼굴까지 잘 생겼는데 예수를 안 믿으니 그 사람과 결혼은 절대 안 돼요. 할 수 있으세요? 돈을 억만금 준다고 해도 안 간다. 나는 절대로 안 그런다 할 수 있나요?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죠.
장담해선 안 됩니다. 누구나 이런 상황이 되면 예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적용질문
-어쩌다 한 번 지은 죄가 속히 드러난 사건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그 사건이 내게 축복이 되었나요?
-세상 권세 앞에서 비굴하게 예수님을 부인한 적은 없습니까?
«공동체 고백_주일마다 부인하는 자»
실험 연구 성과를 위해 주일 예배를 소홀히 여긴 것이 주님을 부인한 죄였음을 깨닫고 회개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모대학 실험실에서 살아있는 식물을 연구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주일이라도 출근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지요.
처음에는 예배와 교회 소그룹 모임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어요. 하지만 성과를 보고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마음이 불안해져 주일을 지키지 않고 실험에 매달렸죠.
주일 오전 예배 대신 오후 예배를 드리다가 나중에는 현장 예배 시간을 지키는 것도 벅차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어요. 실적이 확보되지 않으면 저녁에 교회 홈페이지에 업로드되는 예배 동영상을 보며 겨우 말씀만 듣기도 했지요.
그러던 중 다른 연구소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 연구원들은 주일에는 무조건 쉰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저는 질투가 나서 속으로 그렇게 대충 실험해서 무슨 좋은 데이터를 기대해 하며 비판했지요.
그런데 얼마 뒤 인정받고자 매달려온 연구가 조기 중단되고 실험실 문까지 닫게 되었어요. 그렇게 강제 퇴사를 당하고 나니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듯 저 역시 실적을 예배보다 소중히 여기며 세상과 타협하고 주님을 부인했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었답니다.
그럼에도 언제든 내 유익과 안위에 따라 예수님을 또다시 부인할 수 있는 저 자신을 인정하고 달기울듯 저의 죄를 일깨워주는 공동체에 잘 속해 예배를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저의 적용은
주일날 온라인 예배가 아닌 현장 예배를 시간에 맞춰 드리겠습니다.
직장을 구할 때 주일 성수를 온전히 할 수 있는 곳에만 지원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자신의 배반과 실패에 대해 처절히 회개하고 통곡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손가락질해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양육해 주실 때 눈이 밝아지고 말씀을 깨닫게 되었지요.
오늘 하루 대단한 순종이 아닐지라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약속의 날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함으로 내 인생에도 성령의 강림이 일어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릴게요. 주님
오늘 베드로가 나는 아니라 하며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모습을 봅니다. 저희라고 예외가 있겠습니까? 돈과 사랑과 성공의 세상, 환상에 사로잡혀서 비굴하게 예수님을 부인하면서도 합리화를 합니다.
앉으나서나 외모로 취하는 악함 때문에 주님 앞에 죄송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아무것도 기댈 것이 없어야 하고, 100% 죄인인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자녀가 집을 나가고, 날마다 되는 일이 없는 막히고 막히는 고난이 불어닥쳐도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그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경륜을 보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묵묵히 내 십자가를 잘 지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동행해 주시옵소서 십자가 고난 가운데서도 세상에 알 수 없는 평안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일예배_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https://youtu.be/04S2iJs57CQ?si=I2mhHqN148_21-0D
0326큐티노트
https://youtu.be/wEZqSrr5oIM?si=ysftPyH3dj4EbAdf
김양재 목사의 ost
우연을 믿으면 안되는 이유💖
https://youtu.be/58F-STqXZ6U?si=4GPY42STeo68keJ_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
99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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