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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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살피시는 전능자<큐티노트_김양재 목사>
날짜 : 24.04.05 본문 : 욥기 24:1-25

1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2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3 고아의 나귀를 몰아 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4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5 그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빈 들이 그들의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음식을 내는구나
6 밭에서 남의 꼴을 베며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따며
7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워도 덮을 것이 없으며
8 산중에서 만난 소나기에 젖으며 가릴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9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 잡으므로
10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곡식 이삭을 나르나 굶주리고
11 그 사람들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12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13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며 그 길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14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밝을 때에 일어나서 학대 받는 자나 가난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 같이 되며
15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가리며
16 어둠을 틈타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잠그고 있으므로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17 그들은 아침을 죽음의 그늘 같이 여기니 죽음의 그늘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18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
19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빼앗나니 스올이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20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
21 그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를 박대하며 과부를 선대하지 아니하는도다
22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일어나는 자는 있어도 살아남을 확신은 없으리라
23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주시며 지탱해 주시나 그들의 길을 살피시도다
24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
25. 가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히 내 말을 거짓되다고 지적하거나 내 말을 헛되게 만들 자 누구랴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욥기 24장 1절에서 25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의인의 고난도, 악인의 형통도 주님이 다 아시고 그 길을 살피시는 줄 믿습니다. 깨달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우리의 길을 살피시는 주님을 만나려면
첫째_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1절에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 거라고 해요. 우리는 고난이 오면 늘 언제까지입니까를 부르짖지만, 때와 기한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이지요.

고난의 때와 번영의 때가 이 세상에서 언제까지일지 모르기에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교만할 수도 낙심할 수도 없게 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고난의 때가 언제까지인지를 우리가 다 안다면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번영의 때도 그 기한을 다한다면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기지 않으려 하겠죠. 그래서 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와 기한으로 우리를 양육해가시는 주님이세요.

2절부터 4절에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포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라고 하지요.

땅의 경계표를 옮긴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이 경계를 정해 주셔도 계속 내 경계를 옮기며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볼모 잡고 몰아낸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정해주신 경계, 즉 우리의 주제를 알아야 하는데 있으면 있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내가 해야 할 순종의 범위를 마구 옮겨버리는 것이에요. 이것이 얼마나 교만한 일인지 몰라요.

5절부터 11절까지는 그렇게 경계표를 옮긴 사람들로 인해 겪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언급됩니다. 12절에 성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해요.

욥이 고난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한 것은 이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사람은 자기가 겪는 만큼만 안다고 하지요. 내가 고통을 당한 만큼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통감하며 함께 아파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암 투병을 할 때 암에 걸리신 성도님들이 많이 생각이 나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체휼이 되어 눈물로 기도했었어요. 그것을 깨달으라고 암도 주셨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저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고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이 간절히 알고 싶은 때와 기한은 무엇인가요?
-내가 알지 못하는 때와 기한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양육해 가신다는 것을 믿으세요?
-내 주제를 모르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경계표를 옮기며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지 않나요?

💕우리의 길을 살피시는 주님을 만나려면
둘째_빛 가운데로 나와야 합니다.

13절에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며 그 길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고 해요. 광명의 길을 알지 못하기에 그 길에 머물 수도 없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죠.

아무리 큐티를 하고 십자가 복음을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사단이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들어오지도 머물지도 못하게 막는 것이지요. 그렇게 귀와 눈과 마음이 모두 막혀 있기에 잠시 은혜를 받더라도 곧 광명을 배반하게 됩니다.

14절부터 17절까지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특징을 설명해요. 그것은 바로 은밀함과 어두움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행위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 행위가 드러나면 처벌받게 된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주목하기 쉬운 장소에서나 벌건 대낮에는 활동하지 않아요. 대신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또 자신들의 모습을 쉽게 감출 수 있는 어둠의 때에 주로 활동합니다.

어둠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빛이 없는 상태가 곧 어둠입니다. 우리 주님이 세상의 빛으로 말씀으로 오셨기에 그 주님이 계시지 않는 상태가 바로 어둠인 거예요.

우리 가운데 말씀이 늘 자리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둠에 거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연애도 대낮에 사거리에서 해야 하고, 계약도 대낮에 많은 사람 앞에서 해야 하고, 설령 싸움이라도 대낮에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모두가 우리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스스로 옷깃을 좀 여미게 되는 것이 있잖아요.

17절에 그들은 아침을 죽음의 그늘같이 여기니 죽음의 그늘의 두려움을 앎이니라고 해요. 현대인의 성경은 이 구절을 이들에게는 캄캄한 밤도 아침과 같아서 흑암의 공포에 친숙해진 자들이라고 번역했어요.

아침에 못 일어나서 대낮까지 자며 야행성으로 사는 사람은 죽음의 그늘, 즉 어둠에 친숙하여 그만큼 어둠을 사랑한다는 것이에요.

적용질문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내 안에 머물지 못하게 가로막는 사탄의 방해는 무엇입니까?
-은밀하고 어두운 것이 좋나요? 밝고 모두가 함께하는 것이 좋나요?

«공동체 고백_전쟁 같은 사랑»
남편의 불륜과 뇌출혈 사건에서 오히려 자신의 집착을 회개하니 부부가 회복되어 주님의 광명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대학 신입생 때 같은 학교 의대생이던 남편을 만나 6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어요. 그런데 부드러운 말투와 자상한 성품을 가진 남편은 다른 여자에게도 자상했어요.

저는 남편이 빚 문제로 채권자들에게 학대받아 마음이 힘들었을 때도 오롯이 여자 문제에 꽂혀 말과 눈빛 행동으로 남편을 정죄하며 죽이려 했지요.

아내인 저에게 마저 위로를 받지 못했던 남편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을 운영하며 집도 따로 구해 10년 넘게 주말 부부로 지냈어요. 그러다 공동체의 오랜 설득과 기도로 저희 부부는 합가하게 되었고 저는 가정이 회복되어 기뻤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어요. 그때 저는 남편의 휴대폰을 통해 불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신감에 괴로웠지만 하나님이 이 일로 남편을 향한 집착과 남편을 우상 삼은 저의 죄를 물으시는 것 같았어요.

남편과 자녀를 내 소유로 여기며 집착을 사랑이라 착각한 제 모습을 보고 회개하니 남편을 향한 정죄도 그쳤어요. 현재 남편은 영육 간에 회복되어 교회 소그룹 리더로 세워져 공동체에서 자신의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있답니다.

23절 말씀처럼 저희 부부의 길을 살펴 공동체를 통해 광명 안으로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저의 적용은
남편과 자녀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감사의 언어로 사용하겠습니다.
가정의 위기를 겪는 지체들이 살아날 수 있도록 제 이야기를 솔직히 나누겠습니다.

오늘 18절에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고 해요.

우리의 인생은 무위에 빨리 흘러가는 거품처럼 금세 사라집니다. 악인이 장수하고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밑동 잘린 나무처럼 짧은 인생일 뿐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평화는 예수님을 아는 만큼 누리는 것이지, 이 땅에서 잘 살고 못 살고는 문제가 아닙니다. 의인도 고통받을 수 있고, 악인도 형통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나그네와 같은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의 삶으로 끝이 아니기에 십자가를 길로놓고 인생의 목적을 거룩에 두고 간다면 마지막 날에 내 사모하는 주님이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아주실 것입니다.

이 하루도 그날을 기대하며 천국 소망을 품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희는 늘 언제까지입니까를 부르짖으며 원망 가운데 있을 때가 많아요. 주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와 기한으로 우리를 양육해 가시는데, 저희는 조금만 힘이 있으면 하나님이 정해주신 경계표를 옮기려고 합니다.

그 경계를 지키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그 불순종 때문에 알게 모르게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

어둠이 아닌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늘 말씀을 가까이 두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의인의 고통과 악인의 형통이 다 주께 달린 것임을 고백하며 밑동 잘린 나무와 같은 인생 가운데서 십자가를 길로놓고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반드시 우리를 영접하실 주님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거룩하게 살아낼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주일예배_내가 주를 보았다🎂

0405큐티노트🏵

김양재 목사의 ost 
우연을 믿으면 안되는 이유💖

김양재 목사의 중보기도 #100 여호와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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